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술환국(1694년)으로 다시 서인이 집권하자 관직에 나아가 평시령·장예원사의·온양군수·사복첨
정 등을 거쳤다. 이어 평창·마전군수를 지내며 선정을 베풀어 선정비가 세워졌고 이어 공조정랑·
장악원첨정·장흥주부 등을 지내고 통훈대부에 올랐다.
그의 묘는 도고면 농은리 잔골에 있고 아들 금구현감 성진석(成晉錫)의 묘는 신창면 남성1리에 있
다. 후손들이 도고면과 신창면 일대에 널리 퍼져 살고 있다.
-성지민의 묘와 묘표-
[55] 밀양손씨 손길
| 孫佶
<1563년(명종18년)~1590년(선조23년)>
조선 중기의 인물로 밀양손씨(密陽孫氏) 38세(世)이며 밀양손씨 소윤공파(少尹公派)의 아산시 지
역, 탕정면 명암2리 장목 마을 입향조이다. 현재 장목 마을에 거주하는 53세(世) 손동열(孫東烈, 69
세)씨의 15대조이며 430여 년 전의 일이다.
그는 조선 성종 때 이조정랑을 역임한 손위(孫渭)의 현손이자 세자익위사 시직을 지낸 손수창(孫秀
昌)의 증손이고 어모장군으로 충무위 부사직에 오른 손형(孫草, 1499~1573)의 손자이다. 아버지 손
여성(孫汝誠, ?~1578)의 자는 극일(克一)이고 호는 용담(龍潭)과 촌로(村老)이며 1561년(명종 16년)
의 식년문과에 을과로 급제하였다. 성균관 전적 등을 거쳐 선조9년(1576년)에 천안군수로 재임하며
선정을 베풀어 선정비가 세워졌다. 이듬해에 남원부사로 승차하여 재직하던 그 다음해(1578년)에 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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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산입향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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