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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가하여 천안 직산에 살다가 1812년(순조 12)에 아산 강청리로 들어와 정착했다. 태연(泰淵)과 항연(恒
淵), 익연(益淵) 등 아들 셋을 두었고 장남 태연이 효자로 정려를 받았다. 묘는 그가 강청리에 와서 짓고
살던 집 뒤의 종산에 있으며 2003년에 세운 묘비가 있다.
[81] 이인수
李仁秀
<1737(영조 13년) ~ 1813(순조 13년)>
조선 후기의 무신이다. 본관은 덕수(德水)로 이충무공의 후손이며 통제사 언상(彦祥)의 손자, 금위대장
한응(漢膺)의 아들이다. 자는 성빈(聖賓)이고 부인은 능성(綾城) 구(具)씨 현감 선장(善長)의 딸이다. 능력
을 인정받아 1770년(영조 46)에 천거로 선전관(宣傳官)이 되었고 1772년(영조 48) 무과에 급제한 뒤 통영
수사·경상좌도병마절도사·삼도수군통제사·총융사·훈련원정 등을 거쳐 가의대부 공조참판·금위대
장을 역임했다. 1812년(순조 12) 훈련대장(訓練大將-종2품)에 임명되었고 얼마 뒤에 노병(老病)으로 물러
났으며 이듬해에 졸했다. 강직한 품성으로 1803년(순조 3)에 총융사로 있을 때 부하가 억울하게 조사를
받게 되자 이에 항의하다가 파직된 일도 있다. 묘는 아산시 도고면 금산리에 있다.
[82] 이장현
李章鉉
<1779(정조 3년) ~ 1841(헌종 7년)>
조선 후기의 문신으로 온양, 송악 외암리 출신이다. 본관은
예안(禮安)이고 입향조 사종(嗣宗)의 9세손이자 유현(儒賢) 외
암 간(柬)의 증손이다. 근주(近胄)의 아들이며 용현(容鉉)의
형이다. 자는 돈오(惇五), 호는 초은(樵隱)이다. 실학에 깊은
관심을 갖고 가정에 전습(傳習)하였으며 1810년(순조 10) 식
년 진사시에 합격했다. 문장과 학문으로 고을의 천거를 받았
고 음직(蔭職)으로 늦게 송화(松禾)군수에 제수되었으며 곧
관직에서 물러나 청렴하고 냉담(冷淡)하게 생활하였다. 효도
와 우애, 덕행으로 명성이 높았다. 그가 살던 집의 택호는 송
<송화댁 정원>
화댁이다.
[83] 이정
李貞
<1511(중종 6년) ~ 1583(선조 16년). 11>
조선 중기의 인물이며 충무공 이순신의 아버지이자 덕수(德水)이(李)씨 아산 지역 입향조이다. 정정공
(貞靖公) 대제학 변(邊)의 현손(玄孫)이고 병조참의 거( )의 손자이다. 아버지는 평시서 봉사(平市署奉事-
종8품)를 지낸 백록(百祿)이고 어머니는 초계(草溪) 변(卞)씨 생원 성(誠)의 딸이다. 부인도 초계 변씨이며
현감 수림(守林)의 딸이다. 백록이 1519년(중종 14)에 일어난 기묘사화(己卯士禍)로 참화를 입었다는 일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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