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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남,잊혀진시간을말하다3
광천보통학교로변경되면서식민지교육체제로흡수되고말았다.
현재의 덕명초등학교는 광천공립보통학교가 개교한 1915년 11월3일을 개교원년으로 보
고있다.이는광천공립보통학교가정식인가를받아세운학교이기때문이다.
비록 사립 덕명학교가 광천공립보통학교로 이양되어 일제치하의 공립학교로 개편 운영
되었으나서승태선생을기리는열기는대단했다.
서승태 선생 사후 수많은 후진들이 선생의 투철한 교육관과 흥학공적(興學功積)을 기리는
데 앞장섰다. 당시의 학부모와 제자, 그리고 지역유지들이 힘을 모아 1935년 11월에 학교
교정에흥학기념비를건립하였다.
덕명(德明)이라는교명을지켜온뜻
덕명초등학교는 개교 100년이 넘는 우리고장 교육의 뿌리이며 정신적인 기둥 역할을 해
온 유서 깊은 학교이다. 덕명학교의 정신 속에는 나라를 되찾고 지키려는 강렬한 독립정신
이담겨있다.
일제가덕명(德明)이라는이름을지워버렸다.일제는서승태선생이설립한덕명학교를폐
교시키면서광천공립보통학교라는이름으로일본식교육제도에편입시켰다.일제강점기동
안에 학교이름도 ‘광천신진공립심상소학교’, ‘광천신진공립초등학교’ 등으로 여러 번 바뀌
었다.
일제가 덕명이라는 이름을 없앤 것은, 나라의 독립과 민족교육의 싹을 자르기 위한 계략
이었다. 덕명이라는 이름을 다시 되찾은 것은, 조국 광복 후인 1949년에 ‘덕명국민학교’로
교명이바뀌면서부터이다.
우리 선조들이 광복과 함께 학교명을 굳이 ‘광천’에서 ‘덕명’으로 다시 바꾼 이유는 무엇
일까? 그것은 암울했던 시대에, 민족의 빛이 되어 희망을 심어주던 독립과 민족정신이 깃든
소중한 이름이기 때문이다. 조상 대대로 소중하게 간직하고 지켜온 큰 의미가 덕명이라는
이름속에담겨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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