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禮山의
안민학(安敏學)(1542~1601)
조선 중기의 문신으로 자는 이습(而習) 호는 풍애(楓厓) 본관
은광주박순(朴淳)선생의수제자이었다.
어려서부터영리하고높은목표가있었으며나이가약관때부
터유학에종사하여과거공부에는뜻을두지않았고경서와사
기및제자백가에관통하지않음이없었다.그리고우계성혼과
율곡 이이 두 선생과의 도의지교가 깊었다. 문장과 사한이 날
로 성하여 당대의 명사들이 다 면대하기를 원하였다. 만력계유
(1573)선조 6년에 육행(六行)으로 천거되어 건원능참봉을 제
수하였으나 불취하고 다시 희능참봉을 제수하니 사람들이 다
취사하라권유해응락하였다.그리고우계선생이시를지어말
율곡 이이가 안민학을 칭송하는 글
하기를율(栗)곡(谷)우(憂)시(時)사구(舊)은(隱)터니풍(楓)애(崖)위(爲)양(養)작(作)재
(齎)랑(郞)이라 하였다. (율곡은 시대를 걱정하여 숨어살기를 그만두었고 풍애는 부모봉양
을위하여참봉이되었도다.)얼마않되어사직하고돌아왔다.
경진(庚辰-1580)선조13년에조정대신중에휼륭한선비들이최하위직에침체되어있다고
장계를 올리어 얼마후에 아산현감에 제수되었다. 우계 선생이 글을 지어 송별하고 사암 박
상공도 시를 지어 말하기를 광(匡)시(時)수(須)직(直)사(士) 오(吾)도(道)저(佇)종(終)형
(亨)가 하였다.(시대를 바로잡는 데는 정직한 선비가 필요한데 우리의 도가 오랜만에 형통
하려나) 그때 마치 조종에서는 혼효한 조짐이 나타나고 사화가 장작할 기미가 감돌고 있었
다.공이그때시대에맞지않아은퇴할뜻을두었는데이어서왜구들이갑자기침공하였다.
분주하게달려행재소에이르니사어를제수하고이어서소모사를임명하고즉시남쪽으로
내려가서 군량과 전마와 정예군사들을 모집하여 일행이 아산에 도달하자 신병이 너무심하
여더나갈수가없어서조정에사실을알리고서서애류성룡에게부탁하니류공이손을잡고
눈물을 흘리며 서있으니 공이 정색하며 말하기를 그대의 이러한 눈물이 임진전(壬辰前)에
있었으면금일과같은일은없을것이다. 이에서애류공도심하게탄복하였다.그후사도시
첨정이되었으나병으로사직하고오직고대서적에심취하여즐거움을삼았다.
천자가순정하고조이가정확하여더욱심경과근사록등서에전공하고반드시몸과마음으
로체험하고도를들으면독실이믿고용감하게직진하였다.율곡선생이말하기를이만한사
람은나도보기가드물다하였다.또성품이지효하여날마다관대를가추고가묘를참배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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