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 152페이지

52페이지 본문시작

현은 참봉, 취학은 석성현감, 취문은 선공감역을 지냈다. 성준의 후손은 인주 문방리와 냉정리, 천안
직산, 배방 중리 일대로 퍼져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다.
-성준의 묘-
-창녕성씨 묘역과 재실-
[54] 창녕성씨 성지민
| 成至敏
<1643년(인조 21년) ~ 1717년(숙종 43년) >
조선 후기의 문신이다. 창녕성씨(昌寧成氏) 16세로 상곡공파 아산시 도고면 석당리 입향조이다.
현재 신창면 남성리에 살고 있는 후손 25세(世) 성기경(成起慶, 61세)의 9대조이다.
대학자인 문간공(文簡公) 우계 성혼(成渾)의 현손(玄孫)이고 영동현감을 지낸 성문준(成文濬)의 증손
이며 사재첨정 성역(成
)의 손자이다. 상의원 첨정을 지내고 대사헌에 추증된 구금당(求金堂) 성희
주(成熙 )의 둘째아들이다.
자는 여눌(汝訥) 호는 수졸당(守拙堂)이다. 부인은 도고에 내려와 강학했던 포저 조익(趙翼)의 증손
녀이자 현령 조지강(趙持綱)의 딸인 풍양조씨(豊壤趙氏)와 통덕랑 한송(漢松)의 딸인 청주한씨(淸州
韓氏)이다. 1675년(숙종 1)에 사마시에 합격해서 진사가 되었으며 1681년(숙종 7)에 장릉참봉에 제수
된 뒤 봉사·직장·종부주부·사헌부감찰 등을 역임하였다.
1689년(숙종 15)에 장희빈의 아들을 원자로 정하는 데 반대한 송시열 등 서인이 정권에서 쫓겨난
기사환국 때 정치에서 물러나 신창현, 현재의 도고면 석당리에 내려와 조용히 살게 되었다. 이후 갑
52
아산입향조 |

52페이지 본문끝



현재 포커스의 아래내용들은 동일한 컨텐츠를 가지고 페이지넘김 효과및 시각적 효과를 제공하는 페이지이므로 스크린리더 사용자는 여기까지만 낭독하시고 위의 페이지이동 링크를 사용하여 다음페이지로 이동하시기 바랍니다.
상단메뉴 바로가기 단축키안내 : 이전페이지는 좌측방향키, 다음페이지는 우측방향키, 첫페이지는 상단방향키, 마지막페이지는 하단방향키, 좌측확대축소는 insert키, 우측확대축소는 delete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