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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산효열정려지
[47] 효자 임희철 <任熙喆>
1857(철종 8) ~ 1934년
옷끈 풀지 않고 밤낮으로 할머니 병간호
근대의 효자이며 본관은 장흥(長興)이다. 아
버지는 임보근(任輔根)이고 어머니는 진주
강(姜)씨이다. 영인면 월선리에서 출생했고
자(字)는 원집(元集)이다.
일찍 부모를 여의고 할머니 슬하에서 자랐
다. 어려서부터 지극 정성으로 할머니께 효도
했으며 할머니가 노환으로 병을 앓자 옷끈을
풀지 않고 밤낮으로 기원하며 모셨다. 마침내
위중한 지경에 이르게 되자 손가락을 깨물어
피를 내어 입에 넣어드렸더니 깨어나서 며칠
을 더 살다 운명했다. 3년간을 상복을 벗지 않
고 여막에 기거하며 슬퍼했고 이후에도 공경
▲ 임희철의 묘
하는 마음으로 제사를 모셨다. 그 효행을 아는
향교 유림들이 1892년에 아산현감에게 효자 정려를 세울 수 있도록 해달라고 요청하기
도 했다.
[48] 효자 정수징 <鄭壽徵>
1691(숙종 12) ~ 1747(영조 23)
사람의 죽음은 때가 있거늘 너희들은 잘 있거라
조선 후기 숙종 때의 효자이며 신창현에 살았던 사람이다. 어려서부터 총명했고 효성이
지극하였다. 조석마다 맛있는 음식으로 부모를 공양하고 외출 후 귀가할 때에는 반드시
부모에게 고하였다. 추운 겨울밤이면 부모가 계신 방이 혹시 차가운 기운이 스며들지 않
았는지 염려하여 잠을 이루지 못하였다. 비록 공무가 바쁘더라도 먼저 부모에게 문안을
드린 다음에 관부(官府)에 들어갔다.
부모가 병이 들자 자신의 효심이 부족한 것이라 하여 추위를 무릅쓰고 목욕한 뒤 하늘에
기도하여 자기 몸으로 병을 대신하기를 빌었다. 부모 병환을 구완할 때 약은 반드시 먼저
맛보았고 부모가 입던 옷은 친히 빨았다. 그런 애틋한 효심에도 불구하고 부모의 상을 당
하였을 때 견딜 수 없어 펄펄 뛰며 통곡하여 몸이 상하였으나 끝까지 예를 다하였다. 영
조4년(1728)에 이인좌라는 사람이 반란을 일으켰을 때 죽기를 각오하고 싸워서 고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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