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웠다 거머리가 괴로워하며 꿈틀거리자 부인은 물을 담아 가지고 내려왔다 그리고는 남
편에게 물을 마시게 하고 목욕을 시키자 병은 거짓말처럼 나았다 그 뒤로 못에는 차고
시원한 물이 솟는데 정성을 드리고 그 물을 먹으면 병에 특효가 있다 하여 냉천 이라고
"
"
불리며 부정한 자가 그 물을 마시면 거머리가 나와서 약효가 없어진다고 전해진다.
8)
전통놀이 및 대표적 집단행사
생골마을은 특히 세심사라는 절이 있어 대부분 불교에 다니고 있어 무속신앙을 믿지 않
고 있으며 단지 계조직으로 마을끼리 대동계를 운영하고 있어 애경사시 서로 돕고 있으
며 어버이날에 경노 잔치를 하고 있다
형제동 마을은 특별한 마을 행사가 없다.
남산말에서는 현재는 지내지는 않지만 가뭄이 들면 마을사람들이 모여 선돌바위에서 기
우제를 지내기도 하였다고 한다.
9)
특별히 소개할만한 인물
허옥
이조
자는 계심
호는 술봉
본관은 양천
양천군 형손
의 후예
다 영조조
에 문과에 급제
하여 여러차례에 군읍
을 맡아 다스렸는데
청백
함으로써 세상에 이름이 났었다 묘소는 아산군 염티읍 산양리에 있다
. <
조선
환여승람(
)>
10)
종교단체
생골 마을에는 기독교
1
1
50
여명이며 불교단체로는 아산시에서는 유명한 절로 꼽히는 세심사가 있다 세심사는
역사가 오래 되고 널리 알려져 신도수만 해도
12,000
여명도 넘는다
신라 선덕여왕
27
(645)
자장율사
가 창건
했다고 하나 확실
한 기
이 없다 본군
내 사찰중
에서 가장 오래된 고찰
로 알려진 이
절은 원래
절 이름이 신심사
였으나
1968
년에 일타
스님과 도견스님이
세심사
로 개칭
했다 이조
중종
25
(1530)
에 발간
된 여지승
에도 이 사찰
을 동림산
신심사
라고 기록하고 있으며
대한 불교 조계종 산하이며 영인산 남쪽 사면 중턱에 자리잡고 있다 사역은 인위적인
축대에 의해 크게
2
대웅전을 비롯한 탑등으로 위치하고 있다 상단을 좀 더 자세히 살피면 절의 중심부엔 점
판암으로 만들어진 고려시대의
9
있다 탑의 좌측으로는 현대식 건물인 요사
1
작되는 터가 있는데 이곳에서 주초로 보이는 수개의 막돌덤벙 주초석이 박혀 있는 것을
발견할 수가 있다 대웅전의 좌측으로는 범종각이 있고 대웅전보다 한단 높은 좌측으로
는 석가여래 및
16
나한을 봉안한 영산전이 있으며 우측으로는 요즈음 새로 건립한 것으
로 보이는 산신각이 자리하고 있다 사찰의 입구엔 부도
3
에는 연못이 하나 있고 도로 좌측으로는 시냇물이 흐르고 있다
11)
공장현황
생골 마을에 있는 도자기 공장으로 그리 크지는 않은 공장이다 이외에 형제동과 남산말
에는 공장은 들어서 있지 않다.
12)
마을의 특성
생골 마을은 영인산이 마을을 둘러싸며 산세가 수려하고 절골이라는 골짜기 막바지에 세
심사라는 절이 있고 대웅전 앞에는 세심사 다층 석탑이 있으며 생골과 형제동 마을 사이
에 비래산이 있으며 마을사람들 또한 전형적인 시골사람들의 인심이 물씬 풍기고 애경
사시 서로 자기일처럼 돕는 넉넉함이 있었다.
형제골 마을은 역시 영인산이 마을을 둘러 싸고 있으며 마을에
300 400
년 가량 되어
보이는 느티나무 정자가 있으며 마을 사람들이 농업을 생업으로 하고 있어 주로 벼농사
와 쪽파 농사 작목반을 운영하고 있으며 아직도 정이 넉넉히 배어 나오는 시골 마을이
남산골 마을은 염치 초등학교 삼서분교가 위치에 있는데 아직까지 패교가 되지 않고 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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