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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양군서당의운영과교육전반
기를 깨어 많은 화를 입고 산소를 옮겼다. 묘 밑에 갈명이 있는데 그에 대한 기록이 쓰여있
다. 그의 부친께서도 몰락한 집안의 후손이라 비록 어렵게는 사셨지만 자식들에게 “천석꾼
집안의자부심을가지라”고입버릇처럼말씀하셨다고한다.
한삼덕씨는청주한씨한을숙과한산이씨이지복의3남5녀중장남으로,목수일을하
시던부친이타향살이를주로하여경상북도칠곡군왜관에서태어났다.해방후대치면시
전리에서세살부터열살까지유년시절을보냈다.
그가기억하는시전리의옛풍경은
“산이마을을두르고동네어귀로냇물이흐르는데수구목이주욱있었어요.지금생각해
도참아름다운동네였는데그수구목들이다없어졌어요.”
국촌선생님을만나다
시전리에 있는 대치국민학교를 2학년까지 다니고 청양국민학교로 전학하여 졸업했다.
곤궁한 가정형편으로 상급학교에 진학하지 못하고 부친의 권고로 서당을 찾아 학당리(여우
실)에위치한국촌서당에서본격적으로한학을하였다.
“굳이서당이름이랄것도없이그냥‘국촌서당에다닌다.’고들했어요.선생님이전주이
씨로 성함이 이성내, 호가 국촌(菊村)이었어요. 한문뿐만이 아니고 역사, 상식, 예의범절
모든 면에서 아주 훌륭한 분이셨어요. 숭덕비를 해드린다고 했더니 극구 반대하셨어요.
서당선생은설경(舌耕)이라시며.”
“제가본선생님은조선의마지막한문선생님이라고말씀드릴수있어요.청양군지를낼
때에그분을실어드리려고했는데여러지역에선생님들이많이계셔서실현하지못했어요.”
당시 25명 정도의 학생들이 동문수학했다. 동문회도 만들어 최근까지 친목을 도모하다
대부분돌아가시고세분만이남아서최근에해체했다.
19세까지 4년여 서당을 다니며 다른 학생들보다 먼저 가서 벼루도 닦고 청소도 하여 자
칭 타칭 선생님의 총애를 제일 많이 받았다. 공부도 열심히 하는 성실한 학생이었음을 미루
어짐작케한다.
좋아하는 책이 ‘명심보감’이다. 명심보감에 관한 한 최고라는 소리를 듣고 싶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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