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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양군서당의운영과교육전반
다. 장수의 비결은 자손들이 속 썩이지 않는 것과 마음을 비우고 욕심을 비우고 노름 같은
거절대하지않는거란다.
서당옆에산덕에
옛날 다섯 살 시절에 옆집이 서당(구수 서당)이었다. 담 너머 들려오는 글소리에 따라 읊기
도하곤했다가자연스럽게할아버지께서글방에다니라고넣어주셔서다니기시작하였다.
그것이 서당의 시작이다. 서당에 다니려면 일 년에 벼 한 가마, 보리 한 가마 이렇게 들었다.
그때 작은 돈은 아니었지만 윤홍수 씨의 가정형편은 시골 기준에서 남에게 손 벌리지 않게
살아서중산층정도는넘었지싶다고기억한다.
다섯 살부터 여덟아홉 살까지 다니다 국민학교를 갔다. 예나 지금이나 공부는 그리 싫지
않았는지한자책들을곧잘읽고외워서천자문(千字文)부터계몽편(啓蒙篇),동몽선습(童蒙先
習)까지 다 배웠다. 그 정도면 같은 나이 또래에서는 많이 배운 편이라 국민학교 시절에는
윤홍수씨의한자실력이제일뛰어났다고자랑했다.
8·15 해방 뒤 국민학교를 졸업하고 다시 서당에 가서 한문을 배우게 되었다. 『논어(論
語)』,『통감(通鑑)』 등 실력이 높아져 청양 부근에서는 더 배울 여건이 안 되어 외지인 공주향
교로 가게 되었다. 그리고 그곳에서 신식 중학교로 가기 전에 일 년을 수학하였다. 그 뒤로
학교때문에대학졸업까지외지에있었다.
서당을기억하자면어린시절자신감을많이준곳이라기억한다.한학글도곧잘배워훈
장님께칭찬을받아오면할아버지께서몹시기뻐하시면서“네가잘해서그렇다!더열심히
해라!”하시곤 했다. 그때는 잘 몰랐지만 오늘날 성균관 부관장으로 전국에 한학자로 이름
을올린것은할아버지의칭찬덕이라믿고있다.
신·구교육을넘나드는학구열
윤홍수 씨는 ‘한약사(韓藥師)’다. 55년인가, 60년인가, 아마 전국에서 본인이 제일 오래 한
약방을하고있을거란다.한때학교에서교편도잡았었지만한약사가된건순전히한학에
자신이 있어서 한약사 시험에 도전을 한 덕분이다. 합격한 후 운곡에서 처음 한약방을 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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