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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산효열정려지
[45] 열녀 임씨 <林氏>
적군 핍박에 목 찔러 정절지킨 여인
조선 후기의 열녀이며 아산현에 살았던 이지웅의 아내이다. 병자호란이 일어난 이듬해
인 1637년(인조 15) 초에 청나라 군대의 핍박을 당하자 스스로 목을 찔러 자살하였다.
인조 때에 정려를 세웠으나 지금은 전해지지 않는다.
[46] 효자 임태춘 <任泰春,>
손가락 끊어 피를 부모님 입속에 넣어 효를 다하다
조선 후기 영조 때의 효자이며 염치읍 쌍죽리에
서 출생했다. 본관은 풍천(豊川)이고 자는 자인
(子仁)이며 호는 농옹(聾翁)이다. 그의 증조할아
버지인 서재(西齋) 임징하(任徵夏)가 옥사를 겪
은 이후 할아버지와 아버지가 세상과 거리를 두
고 은거했다. 귀머거리 늙은이라는 뜻의 호(號)
에서 보여주듯 그 자신도 벼슬에 뜻을 접고 학문
과 효행을 실천하며 살았다. 부보님 병환 중에는
근심으로 하루하루 병간호를 손수하였고 병환이
위중하였을 때는 약효의 효험을 보지 못해 사경
▲ 효자 임태춘 정려의 명정현판
을 헤매는 부모님에게 자신의 손가락을 끊어 흐
르는 피를 입속에 넣어드려 효를 다하
는 등 공자가 말한 효행의 다섯 가지를
모두 갖추고 지극하게 부모를 섬겼다.
돌아가신 뒤에는 예에 따라 삼년상을
모셨다. 그의 이런 효행이 후에 조두순
에 의해 왕에게 알려져 1843년(헌종
9) 효자 정려가 내려졌다. 또한 1875
년(고종 12)에 이조참의에 증직되었
다. 지금도 아산시 염치읍 쌍죽리 마을
에 그의 정려가 전해진다.
효자 임태춘 정려각의 정려기 일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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