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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방과 독립이 주는 교훈
눈앞에서 멀어지면 마음에서도 멀어진다는 말이 있다. 그래서일까
사람들은 기념일을 정해놓고 잊혀가는 역사를 기억하며 각성하고자
다짐한다. 그러나 정작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지는 의기(義氣)는 어쩌란
말인가.
1875년 강화도 사건은 우리 민족의 숨통을 조이는 통한의 사건이
시작된 것이다. 그 후 계속해서 감시하에 있던 조선은 1910년 8월
29일 강제합방조약에 강제 서명하게 된다. 그 후 통한의 36년!
국민의 기본권박탈 강제노동, 강제징용, 역사, 언어, 문자까지도
서산문화원장
탄압에 굴복하고 이름과 성까지도 일본식으로 바꿔야 하는 한민족
이 준 호
문화 말살 정책에 통탄이 매일 계속되고 있었다.
세계 열강들과의 전쟁준비로 미쳐 있는 일본은 갖은 약탈과 탄압
으로 식민지화했고 아예 인간의 존엄성마저 짓밟아 버렸던 것이다.
그래도 우리의 선열들은 온갖 탄압 속에서도 맹렬히 지하 운동 등의 방법으로 민족성을 잃지
않고 싸워온 결과 해외임시정부를 수립하고 광복군을 조직하는 등 항일 투쟁에 총력을 기울인바
1943년 11월 카이로 회담을 통해 미, 영, 중의 원수가 모여 우리의 독립을 밝혔던 것이다.
1945년 7월 포츠담 회담에서 한국의 독립이 재확인됐고 1945년 8월 히로시마 나가사키에 떨어
진 원자 폭탄의 위력에 놀란 일본은 끽소리도 못한 채 8월 15일 미국에 무조건 항복하면서 우리는
해방을 맞은 것이다. 그러나 해방 후에도 제주도 4.3사건 같은 엄청난 소용돌이 속에 우리는 질곡의
역사적 전환점을 겪어야 했던 것이다.
남로당 조직이 제주도에 결집하면서 발발된 4.3 사건은 28만 제주인구 중 15,000여 명이 전쟁이
아닌 지역에서 이념적 대립으로 무참히 희생된 해방 직후의 비극이 아닐 수 없다.
그 후 1948년 5월 10일 유엔 한국 위원단의 감시하에 남한에서 역사적이고 민주주의의 희망인
총선거가 단행되어 국회가 소집되고 헌법이 제정되었으며 이승만 박사가 초대 대통령으로 탄생되
었다. 그해 8월 15일 대한민국 정부가 수립된 것이다.
자유민주국가로 발족한 대한민국은 1948년 12월 파리에서 열린 유엔 총회에서 합법 정부로
승인받은 쾌거를 이룬 것이다.
8.15의 의미는 해방과 정부 수립이라는 양면적 의미가 있기에 더욱더 큰 뜻을 품었다 하겠다.
현재를 사는 우리의 정신 속에 지워서는 안 될 구국 선열들이 이루어놓은 장엄한 역사와 아직도 끝나
지 않은 이데올로기 문제로 억울한 죽음을 당한 영령들에게 머리 숙여야하는 8.15가 되어야겠다.
특별히 논거하자면 역사적 대원수인 이토 히로부미(이등박문)를 하얼빈역에서 권총으로 처단한
안중근 장군이다. 안중근의사는 재판과정에서 한국의 독립과 동양 평화를 위해 독립전쟁의 일환
으로 결행한 것이지 절대로 테러나 살인 사건이 아님을 밝혔다. 현재에 와서 일본학자들도 안중근은
동양평화론자였고 대한민국의 참모 총장 겸 독립특파대장이었기에 당연한 전쟁사였음을 일본학자
들도 주장하고 있다. 이토록 갖은 만행과 학정 속에서 견디며 이겨낸 선열들의 희생을 공고히
하고 그들의 침략적 만행을 더 이상 간과해서는 안 되겠다.
http://seosan.cult21.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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