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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포(內浦) 문화의 보고
가로림만 시대를 만들자.
옛부터 사람 살기가 가장 좋은 곳은 어염시수(魚
柴水)가 잘
갖춰진 곳을 꼽았다. 어염시수를 풀어 보면 물고기 잡기가 편하고
소금을 쉽게 얻을 수 있어야 하며 땔 나무가 흔하고 물이 좋아야
한다고 했다.
이 네가지가 모두 갖춘 곳이 서산 땅이고 작게는 가로림만을 끼고
자리한 팔봉, 지곡, 대산을 얘기할 수 있다. 그중에서도 가운데 위치한
서산문화원장
지곡은 삼한시대의 마한에 속하는 치리국국이라는 부족국가의
이 준 호
치소(治所)로 자리 잡아 백제와 통일신라, 고려를 거치며 3천년
이상을 치소로 이름을 떨쳤던 곳이다. 어느 지역이 3천 년 이상을
치소로 있었겠는가. 천도와 이주의 연속이었던 우리나라 역사를 돌아 볼 때 이곳이 얼마나 살기
좋은 곳 인가를 입증해준다. 또한 이곳 치소에서 1km 지점엔 가로림만이 펼쳐지면서 닷개포(碇
浦)가 있어 대중국무역의 교두보 역할을 했던 곳이다. 닷개포는 범선(帆船)시대에 선박의 입출항
이 편하고 정박의 안정성이 뛰어난 곳으로도 유명하여 교역을 하는 자들과 사신들이 편히 이용
하던 사신 행렬의 관문이었던 것이다.
통일신라시대에도 대당무역이 활발했던 곳이고 당나라에 유학한 최치원의 문장이 당나라에서도
이름을 떨쳤었는데 그 유명한 최치원을 이곳 부성 태수로 임명했었던 것은 역사적으로 또는 지정
학적으로도 앞서 말한 어염시수를 잘 갖춘 곳이기에 이곳으로 발령을 내렸던 것 같다.
이곳 가로림만과 천수만을 운하로 연결하고자 노력했던 4백여 년의 역사를 살펴보면 우리 선조
들의 피눈물이 서려 있는 곳이다. 지금의 기술로는 1년도 채 안 걸릴 공사량인데 그 길고 긴 세월을
많은 인력과 국력을 쏟아 부은 곳이다.
동(東)으로는 서산만에 면하고 서(西)로는 가로림만, 북면( 面)은 산업단지로 공단이 접수한지
오래고, 서산만은 대호방조제로 잃었으며 남(南)으로 A, B 방조제로 천수만을 잃어 버렸다. 동서
남북이 바다였던 서산은 단 한곳 가로림만뿐인데 요즘 조력발전 운운하면서 주민들을 슬프게
하고 있다.
역사와 문화의 현장이다. 이대로는 안 된다는 사실을 삼척동자도 알 수가 있고 이런 개발이
절대로 국익이 될 수 없음을 인지하기 바란다.
http://seosan.cult21.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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