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 644페이지

497페이지 본문시작

495
청양군서당의운영과교육전반
훈장을 하셨지. 가출이라는 동네였는데 60년대 예당저수지가 막히면서 객지로 다 떠나
고선산만있어요.외할아버지산소에도가끔가지요.”
정선생님을만나다
안효문 씨는 국민학교를 졸업하고 상급학교에 진학할 형편이 못되어 서당에 다니게 되
었다. 원동(청양군 비봉면 신원1리)에 鄭相祿 선생에게 수학하였다. 어려서부터 농사일을 해야
했던 시절, 어리면 어린 대로 거들어야 할 일이 많았다. 봄부터 어른들이 논둑에 풀을 깎고
땅을 파면 콩 씨를 넣기도 하고, 어른들이 가래질 하면 뒤따라 두렁도 밟고, 모심을 때면 모
쟁이를 하고 벼를 베면 볏단을 주워내랴, 심고 수확하기까지 농번기에는 아이들도 일손을
보태느라학교에가지못했다.가는날이반,못가는날이반이었다.
“내가마지막제자여.77세에돌아가셨는데극노인었어.”
정상록 훈장으로부터 소학, 명심보감, 대학, 맹자를 배웠으나 노환으로 훈장님이 돌아가
시자 서당 자체가 없어지고 말았다. 이후에도 농번기에는 부지런히 농사를 짓고 농한기에
틈틈이다른훈장님들을찾아가공부를했다.
“용천리에 송호영께 중용을 배웠지. 중용이 얼마 안 돼. 한 달 만에 떼고 주역을 가지고
갔더니 못 가르친다고 해서 주 선생님(주경인)을 찾아가서 주역을 배우고, 청수리 이 선생
님(이석조)께논어도배웠지.선생님마다특기가있어.”
논500평을7000평으로
21세에결혼을하였다.부모님과한집에살다가군제대후27세에답500평전700평을
받아 분가하였다. 지금 사는 터에 목조로 아버지께서 집을 지어주셨고 분가 초기에는 큰집
에서한달에쌀두말씩얻어다직접지은보리와섞어먹으며살았다.
“만 6년을 큰집에서 살았는데, 큰딸도 그때 낳았어, 조카들이 8남매였어. 시어머니에 동
서,그러니안식구가얼마나어려웠겠어.지금세상같으면못살겠다고했을거야.”
“부인들이집에서맡은일이식사며의복빨랜데,그뿐인가우리어머니세대는더어려웠
지. 방앗간이 없으니 보리 방아, 쌀 방아 쪄서 먹어야 하고, 그나마 방아라도 쪄서 먹을

497페이지 본문끝



현재 포커스의 아래내용들은 동일한 컨텐츠를 가지고 페이지넘김 효과및 시각적 효과를 제공하는 페이지이므로 스크린리더 사용자는 여기까지만 낭독하시고 위의 페이지이동 링크를 사용하여 다음페이지로 이동하시기 바랍니다.
상단메뉴 바로가기 단축키안내 : 이전페이지는 좌측방향키, 다음페이지는 우측방향키, 첫페이지는 상단방향키, 마지막페이지는 하단방향키, 좌측확대축소는 insert키, 우측확대축소는 delete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