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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남,잊혀진시간을말하다3
했기 때문이다. 상급학교 진학은 못 하더라도 부모님 농사일을 도우며, 한학을 해야 우리
집안이 마을 사람들로부터 무식하게 보이지 않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 한학을 공부하기
로결심했다.
열일곱살에6·25를겪었는데,성인은아니라도클대로다커징집에끌려갈까숨어다녔
다. 6·25 당시 천내리에 살던 김만영이 맨 먼저 서당을 다녔으며, 그 영향으로 그도 청소리
의 김홍원 선생한테 4개월 야학으로 한문을 배웠다. 그 후 적곡의 홍재준 선생에게 1년을
배우다가 피난 오신 최병대 선생을 만나 6개월 정도 맹자·중용·대학을 배우다 스물한 살
에 군에 입대했다. ‘삼경’은 안 하고 ‘사서’만 했으며, 공자의 사상을 존경하고 실천하려 했
고지금도그렇다.
홍재준 선생은 소사영 씨의 집에도 종종 오셔서 가르치셨다. 어느 날인가는 새벽에 불을
때고있는데,선생님이불쑥들어오셨다.
“자시(11~새벽1시)에 눈이 떠서 고개를 넘어오며 중용을 세 번이나 외웠는데도 아직 날이
안밝았네”
하셨던생각이난다.
최병대 선생은 예산군 덕산면 시량리 분이다. 일제강점기에 윤봉길 의사에게 한학을 가
르쳤다는 이유로 정산과 청남에서 이십팔 년을 피난 생활을 하셨다. 선생님의 빛나는 공덕
을 잊지 않고 오래도록 널리 전해졌으면 하는 마음으로 2019년에 원청소 마을 입구에 청양
군의지원을받아송덕비를세웠다.
소사영 씨의 할아버지대 부터 내려오는 가훈은 ‘근면·성실·인내’로, 농촌에 살려면 부지
런하고 건강해야 된다는 할아버지 말씀을 늘 듣고 자랐다. 집안의 전통이라면 아직 집안에
이혼한사람이없다는것으로,여자는시집을가든시집을오든그집에맞춰살아가는것을
전통으로여기고있다.
남산골-남산서당
군 제대 후, 25살에 혼인을 하고 아버지와 동생들과 한집에서 살았다. 한 섬지기 농사는
아버지를 도와 동생들이 지었고, 마땅히 할 일이 없었다. 건달처럼 동네 초상나면 쫓아다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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