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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었는데 그 딸이 덕수이씨(德水李氏) 이정(李貞, 1511~1583)과 혼인하여 충무공 이순신(李舜臣) 등
4형제를 낳았고 이정이 아산으로 들어오는 계기가 되었다. 변오의 아들 변존서(卞存緖, 1561~?)는
이순신과 외사촌이며 훈련도감 첨정으로 임진왜란에 참전하여 선무원종공신 1등에 책훈되었다. 변자
호 이후 6대에 걸쳐 외아들로 어렵게 대를 이어오다가 7세손부터 조금씩 후손이 늘어나서 오늘에 이
르고 있다. 후손 중 일부가 모종동 지역에 와서 살게 되면서 흔히 말하는‘변씨네 마을’
이 형성되기
도 하였다.
변자호의 그의 직계 여러 후손들의 묘소는 음봉면 동천리 동쪽의 시곡(시궁골)에 있다.
-변자호의 묘-
- 변자호의 아들 변홍조의 묘-
[51] 대구서씨 서보수
| 徐普修
<1778년(정조2년)~1817년(순조17년)>
조선 후기의 인물로 대구서씨(大邱徐氏) 20세이며 도위공파 아산시 지역, 탕정면 호산3리 입향조
이다. 선대는 예산에 거주하였다. 현재 호산3리 새터 마을에 거주하는 26세(世) 서정근(徐廷根, 73
세)씨의 6대조이다.
고조는 상의원 직장(直長)을 지낸 서진리(徐晉履)이고 증조는 진사시에 급제하고 광흥창 주부를 지
낸 뒤 좌찬성에 추증된 서문택(徐文澤)이며 조부는 제천현감을 역임한 서종엽(徐宗曄)이다. 아버지는
서명득(徐命得, 1733~1796)이고 어머니는 용인이씨(龍仁李氏)로 이의주(李宜柱)의 딸이다.
1남1녀의 외아들로 태어났으며 부인은 한산이씨(韓山李氏)로 이성채(李成采)의 딸이다. 그가 언제
이곳으로 왔는지는 불명확하다. 혼인을 계기로 온 것으로 추정되며 대략 200여 년 전으로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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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산입향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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