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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양군서당의운영과교육전반
추목 서당은 경관이 좋았던 것으로 기억한다. 정진호, 이면구 두 분의 훈장선생님께 한문과
한시 등 깊은 가르침을 받았을 수 있었다. 추목 서당은 당시 주위에 있는 서당에 비해서 유
명했던 선생님들을 모셔다 수학하였다. 정진호 훈장님은 화성분이셨고 이면구 훈장님은 안
면도 분이셨다. 훈장님들은 매일 읽은 것을 외우지 못하면 진도를 나가지 않으실 정도로 매
우엄하셨다.열심히가르친다는소문이난까닭이었는지서당엔학생이많았다.주간에15
명,야간에12명이렇게27명다녔으니부근에서는꽤큰서당이었을것이다.
문명근 씨는 “1년에 학비가 백미 다섯 가마니였다”하였는데, 이 기억은 다소 과장되었거
나 잘 기억나지 않는 듯하다. 같은 시기에 진행된 다른 구술자 중 한 분의 기억에는 딱히 정
해져 있는 것은 아니지만, 그곳 서당은 물론이며 주위의 서당들도 1년에 벼 한가마니(쌀 닷
말),보리한가마정도였다고구술하고있다.
학습력이높았던문명근
문명근 씨는 천자(千字)부터 논어(論語) 20권까지 수학(修學)하였다. 일반적으로 서당 교육
과정을 등급으로 기준하면 초급, 중급, 고급으로 나누기도 한다. 이건 누가 정한 것은 아니
며 서당에서 훈장이 가르칠 수 있는 능력에 따른 학생의 분류법인 경우가 많다. 일반적으로
천자문(千字文), 동몽선습(童蒙先習)이 기본이다. 그 외에 사략(史略), 통감(通鑑), 소학(小學), 사
서(四書), 당송문(唐宋文), 당률(唐律) 등 범위가 넓다. 시골서당에서는 훈장님의 능력에 따라
배우고 도시 더 큰 서당이나 향교로 다니기도 했다. 그는 추목 서당에서 더 배울게 없어지
자월정사에서스님들의심부름을하면서한학을1년여더공부했다.그때논어20권을마
쳤다. 문명근 씨의 공부는 보통 중상급을 넘어 선 고급에 속한다. 그래서 인지 한학에 관한
자부심이대단해보였다.
문명근 씨는 월정사에서 스님을 도와 새벽 예불한 기억보다는, 서당에서 친구들과 장난
치다 훈장님께 혼나면서 글 배운 기억이 훨씬 생생하다고 말 했다. 책시세(책씻이, 책거리)를
할 때면 집에서 담근 동동주와 훈장님 드릴 고기 조금 보자기에 싸오고, 떡을 해 와서 훈장
님께큰절하고서당사랑채에둘러앉아나누어먹던기억은아직도선하다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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