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 644페이지

480페이지 본문시작

478
충남,잊혀진시간을말하다3
청양군??
할아버지 경기 김동년 씨는 홍성 홍동면 문당리에서
서당의?운영과?교육전반
살다가 무슨 연고로 이곳 청양군 운곡면 후덕리 텃골
공부못한
로 와 자리 잡았는지 모르겠다. 할아버지는 증조할아
한이씨꺼멓게
버지한테 양자로 왔으며, 아버지는 3형제 중 막내였
다. 후덕리 292번지에서 태어난 김기태(金基泰) 씨는 여
가심에쌓였유
섯 살에 아버지 김세환이 돌아가셨고 열한 살에 어머
니 연안 명씨도 돌아가셨다. 한 번도 어머니의 이름을
불러 본 적도 들은 적도 없어 어머니의 이름을 모른다.
호적이나 봐야 알 것 같으며, 외갓집은 비봉리다. 형제
로는여동생이한명이있다.
집안의 가훈이나 전통은 들어본 적이 없다. 농사 채
김 기 태(1936년생)?
가 많은 큰아버지의 농사일을 거들며 26살에 결혼, 29
청양군?운곡면?청신로
살에 분가를 하였다. 큰아버지는 일 욕심이 많아 땅도
많았다. 당시 논이 30마지기(6천 평)였고, 딸만 있어 작
은새어머니로부터아들을낳았다.
운곡초등학교 3학년에 올라가자마자 4월 초에 어
머니가 돌아가셔서 더 이상 학교에 다닐 수가 없었다.
그해 여름에 해방이 되었다. 아침 먹고는 나무하러 다
니고, 저녁 먹고는 새끼를 꼬며 집안일을 거들었다. 사
촌 형님이 초등학교 옆에 살았는데, 그곳에 가서 공부
도 배우고 한문도 조금씩 배웠다. 17살에 서당엘 몇
개월 다녔다. 큰아버지는 일 안 하고 서당에 다닌다고
성화셨지만, 다행히 집과 서당이 가까워 촘촘히 다닐
수있었다.서당에가서큰소리로글을읽으면하루일
의 곤함도 이겨낼 수 있었다. 결국은 농사일로 큰아버
지의 걱정이 심해 몇 개월 만에 공부를 그만둘 수밖에

480페이지 본문끝



현재 포커스의 아래내용들은 동일한 컨텐츠를 가지고 페이지넘김 효과및 시각적 효과를 제공하는 페이지이므로 스크린리더 사용자는 여기까지만 낭독하시고 위의 페이지이동 링크를 사용하여 다음페이지로 이동하시기 바랍니다.
상단메뉴 바로가기 단축키안내 : 이전페이지는 좌측방향키, 다음페이지는 우측방향키, 첫페이지는 상단방향키, 마지막페이지는 하단방향키, 좌측확대축소는 insert키, 우측확대축소는 delete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