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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시는김인후가정미사화(명종2,1547)때‘양재역벽서’사건의억울
한누명을쓰고목숨을잃은임형수를낙락장송에빗대어애도한노래이
다.『금호유고』에는이밖에도퇴계와나눈‘호연지기’에관한이야기사
약을받으면서도부모가있는곳을향해재배하고아들을불러난세에
살아가는지혜를일러준내용이실려있다.금호임형수선생의호연지
기를엿보기위해금호유고에실린내용한구절을아래에그대로인용
한다.
〈금호(錦湖)임형수(林亨秀)의호연지기〉
금호 임형수 선생은 나주 송현의 금수(금호강) 남쪽에서 1514년에 부친
임준(林峻)과어머니인안동권씨현감권석(權錫)의따님사이에2남으로태
어나셨다.
임형수 선생은 어려서부터 호걸스럽고 비범한 기상이 남달리 뛰어났다.
18세(1531, 중종 26)의 나이에 진사시에 합격하고 22세(1535, 중종 32)에
문과에병과로합격한후한림,설서로등용되고 1537년중종이망원정(望
遠亭)에서있었던권농행사장에참석한문무백관들에게`동정모추(洞庭慕
秋)‘라는제목으로칠언율시를제진토록하였는데,이때병조판서소세양이
1위,주서였든임형수가2위를차지하였다.이때부터걸출함이알려져이해
춘추관기사관,홍문관박사가되고인종이될동궁의시강원사서를역임한
다.1538년10월에는호당에사가독서를하게되며당대에덕망높은선비
들인퇴계이황,하서김인후등과교분을나눈다.금호임형수선생의호방
한성격의단면을퇴계이황과나눈대화에서엿볼수있다.
10세나연배인퇴계선생과는각별한사이로교분이두터웠다고한다.독
서당수학시절퇴계와술에취하여정담을나눌때임형수선생은퇴계에게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그대가 사나이 장부의 호연지기를 아는가”라고 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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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성의청난공신임득의장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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