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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6?서산천수만의옛모습
한편 심한 조수간만의 차이로 인해 간조 시에는 넓은 간석지가 드러났고, 사
리 때에는 더욱 넓은 개펄이 확보되었다. 이러한 개펄은 주민들에게 중요한 생
활의 터전이었다. 이 개펄은 모래와 펄이 섞여 있기도 하고, 모래나 펄 만으로
이루어져 있기도 하다. 그에 따라 다양한 어패류와 갑각류가 서식했기에 지역
별로 다양한 어패류를 생산할 수 있었다. 이러한 어패류와 갑각류의 다양성은
주민들의 생업활동에 적지 않게 도움이 되었다. 철에 따라 어패류와 갑각류를
채취하기 위해 사람들이 떼를 지어 이동했다. 한 예로 현재의 지산리 인근에는
논게가 많았는데, 특히 오월 단오철이 되면 교미하기 위해 돌아다니는 논게가
많으므로 이것을 줍는 행렬이 3㎞ 정도나 되었다. 천수만의 개펄의 활용은 단
순히 개펄에서 채집하는 것에 국한되지 않았다. 개펄 사이로 난 갯고랑[갯골]은
중요한 어업 현장이었다. 갯고랑은 개펄에 나있는 고랑으로 이곳에는 바닷물이
먼저 들어오고, 나중에 빠지므로 삼중망이 보급되기 이전에는 어선어업이나 정
치어구 어업이나 모두 이곳에서 이루어졌다. 갯골이 넓은 것은 육지의 둠벙과
도 같았는데, 은개전 개울, 사시랭이 개울, 막동전 개울 등으로 불리던 곳들이
주된 어획 장소이다. 봉락리의 은개전 개울은 지름이 300~500미터나 되어 둠벙
으로불리기도했다.
반면 수심이 낮은 천수만에서는 중선을 접안할 수 없어 중선업이 크게 발달
하지는 않았다. 인근 황도에 중선 30척이 있었던 것에 반해 이곳에서 중선을 많
이 부리는 창리라 할지라도 3~5척의 중선을 부렸을 뿐이며, 대부분 1척 정도의
중선을 소유했었다. 한편 덕지천동의 중선 소유자들 모두 안면도에서 100여년
전에 이주해온 분들로 이들이 이주해 오기 이전까지는 천수만 내안에는 중선업
의비중이높지않았음을알수있다.
천수만의 내안은 안면도가 병풍처럼 가로막고 있어 아늑한 항아리 형의 내
안이 조성된다. 이곳은 수심은 얕지만 육지에서 흘러나오는 육수와 바닷물이
만난다. 해미천의 본류는 도당천으로, 도당천의 제1지류가 해미천이다. 가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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