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으로 오랜 역사가 있는 마을임에 틀림없다 비록 현재 살고 있는 주민들 가운데
90%
30
년이 넘게 살고 있지만 실제 이곳에 정착한지는 그리 오래된 성씨는 없다 그래도 이들
성씨 가운데에서 가장 오래된 성씨는 남씨로 현재
4
4
오미니 마을에서 윤씨 유씨 강씨 이렇게 세 성씨들이
120
년전부터 터를 잡고 살았지만
마을의 형성년도는 서기
1880
년경 약
120
년전에 형성된 것으로 추정 가능하며 정확히
세 성씨중 어느 누가 먼저 들어왔는지는 알수 없으나 거의 비슷한 시기에 터를 잡았다고
하며 현재 윤씨가 가장 많은 것으로 보아 윤씨들이 주로 터를 이루고 산 것으로 보여진
6)
지 명
역말마을의 지명
역말
역촌리의 가장 큰 마을로 조선때 시흥역이 있었다 하여 역말이라 함
삼거리
역말 위쪽에 있는 마을로 길이 세갈래로 되어 있음
동산
마을 뒷편에 있는 산으로 현재는 순복음교회가 지어져 있으며 이곳에는 옛날 남
씨들의 선친묘가 있었다 함.
평전들
역말 앞에 있는 넓은들을 말하며 고종 때 참판 수당 이 남규가 을사보호조약
을 항거하다가 예산고향에 돌아와서 홍주에서 의병을 일으킨 의병 대장 민 종식을 숨겨준
혐의로 왜경에게 피검되어 무참한 고문을 받으면서도 종시 항거하다가 이 들 냇가에서 참
혹하게 피살되고 그 아들 이 충구와 종 김응길이 또한 항거하다가 함께 피살 되었음 순
절현장에
1986
년 충남도에서 순절비를 세움
시흥역터
역말에 있는 시흥역터를 말함 이조초에 시흥도역승을 두어서 신창의 창덕
예산의 일흥 덕산의 급천 면천의 순성 당진의 흥세 아산의 장시 평택의 화천등 각 역
을 관할하다가 그 후에 홍주의 금정역에 합병 되었음.
송악장터
: 1970
년대까지 이곳 역말에서는 시장이 형성되어
2 ,7
. 1970
년까
지 이어지다가 근년에 와서 자동 폐쇄됨.
역말다리 역촌교
역촌 리 역말 과 외암 리 새집매 와 경계가 되는 다리
1 (
3 (
느티나무 정자
역말 마을 중간에 심어져 있으며 수명은
250
년이 훨씬 넘은 것으로
소설가 방인근이라는 사람이 쓴 마도향의 향불 이란 책에 이 느티나무가 나온다고 함
면잠산
역촌리와 외암리의 경계에 있는 산 모양이 누에가 자는 것 같다고 함
이남규 순절비
조선 고종때의 참판 수당 이 남규가 을사보호조약에 항거하다 왜경에 필
살되어 그의뜻을 기리기위해
1986
년 충남도에서 그의 순절비를 세움
오미니마을의 지명
오미니
역촌 리에서 가장 큰마을로 역말 위 남쪽
2
1km
지점에 위치한다
삼거리
오미니 옆에 있는 마을로 예산방면 송악저수지 방죽밑에 위치함
군자봉
오미니 앞에 있는 산으로서 그리 높지 않으나 경관이 수려함
무명교
역촌에서 오미니마을과 삼거리마을로 갈라지는 삼거리에 있는 작은 다리
7)
전 설
남씨들의 전설 역말마을
면잠산은 역말 뒷편에 있는 동산을 감싸고 있는 산으로 모양이 마치 누에가 잠을 자는 형
태로 생겼다하여 면잠산이라 불리게 되었다고 전해진다 면잠산과 줄기가 이어져 작은 산
을 이루고 있는 동산에는 옛날 남씨들의 선친묘가 있었다고 하는데 그때만해도 역말에는
남씨들이 집성촌을 이루며 살고 있었다 그런데 어느날 가뭄이 들어 물이 부족해서 강당골
에서 내려오는 물을 돌려 논에 물을 넣어야만 하는데 동산이 가로막아 물을 돌릴 방법이
없게 되자 어렵지만 면잠산과 동산이 이어진 부분을 잘라 수로를 내는 수밖에 없다고 생
각한 마을사람들은 줄기를 파헤치기 시작했고 놀랍게도 그곳에서는 붉은 피흙이 나왔다고
한다 그런일이 있은뒤로 역말에 집성촌을 이루고 살았던 남씨들은 하나 둘씩 떠나버리게
되었다고 한다 이렇게 면잠산과 동산이 이어진 줄기를 끊어 남씨가 망해 버린 것이라 믿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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