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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26,1531)되던해에진사에합격하고,22세(중종30,1535)에별시문과
병과로등과하였다.이후한림설서등을지냈다.24세가되던1537년(중
종32)9월중종이친히망원정에나아가문신들의경시대회를개최한적
이있는데,이때병조판서소세양에이어주부임형수가차석을차지했다.
이망원정경시대회를계기로문장과학덕이조정에알려졌다고한다.그
해춘추관기사관홍문관박사가되고,이듬해(25세,1538)동궁(仁宗)의
시강원설서가되었다.이무렵호당(湖堂)에서퇴계이황,하서김인후
등을만나깊은교분을쌓았다.이황(李滉,1501~1570)과김인후(金麟
厚,1510~1560)는교분이두터웠던임형수가34세의젊은나이에억울한
누명으로참화를당하자이를몹시애통해했다고한다.퇴계는몇주발의
술을청해마신후소리내어통곡하였고,김인후는애도하는단가「도사
수원사작단가(悼士遂寃死作短歌)」를지어그의원혼을달랬다고한다.
임형수는많은문장을남겼다.그가운데퇴계가상쾌하고도웅장하다
고평한칠언장편고시『오산가』·『여칠보산기』와인종의명으로지은
『중종대왕시책문』등은널리알려진문장이다.당대에많은이들이임형
수의학문과도량을평한바있다.그의행적과정신은많은이들의글속
에자세히기술하고있다.김수항(金壽恒)은『금호묘갈명』을지어‘척당
준위(倜?儁偉)’,‘불구소절(不拘小節)’이라했고,이정형은『동각잡기(東
閣雜記)』의「제가잡기(諸家雜記)」에서‘뇌락헌앙’이라했으며,허균은성
수시화가운데풍류호일로꼽았다.김인후또한아래의동량지가(棟樑之
歌)를지어임형수의비통한죽음을슬퍼했다.
엊그제버힌솔이낙락장송아이런가,
저근덧두던들동량재되리러니,
어즈버태평연월이기울면어느남기버티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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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난공신임득의장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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