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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黃巢의난亂이일어나자을지었는데,이글은황소가보
다가저도모르게침상에서내려앉았다는일화가전할만큼명문이었다고한
다.그후로도그유명한『계원필경桂苑筆耕』20권을지어문명을중원에떨쳤
던그가조국신라로돌아온것은신라헌강왕10년(884),그의나이28세되
던해10월이었다.
그당시신라는말기증상을보이며국정이극도로문란하던시기여서인
재를알아보지못하였고,지방의태수太守 자리로전전하던선생은40대중반
에돌연세상에서자취를감추고말았다.이를두고후세에서는말이많았다.
기울어지는조국과운명을같이하지않았다는비판과,숨어서고려의건국을
도왔다는소위‘밀찬조국설密贊肇國說’도있었지만44세의일기로경상도가야
산에서 신선이 되었다는‘우화등선설羽化登仙說’이 퍼지면서 선생의 생애 후반
은영원한수수께끼로파묻히고말았다.
그러나이곳홍성은선생이말년을보내다가95세로천수를다하고뼈를
묻은곳이라한다.선생의묘역까지는추측하고있지만계곡에흩어져있는
선생의 석각필적石刻筆跡들은 공인된 유적이다. 월계리 장방형의 큰 자연석의
전면에는‘용은별서龍隱別墅:용은별도의농막에숨어있다’라는4글자가크게새겨져있
고,작은글씨로‘質凝雲彩文折龍鱗座待明月醉留佳宵(질의운채문절용린좌대명월취
유생소:연이은구름빛은용의비늘처럼찬란한데,앉아서밝은달을바라보니그에취하여차마떠날수가없구나!)’
라는4행시가새겨져있다.이곳은선생의별서別墅:별장가있던곳이며,글씨
는선생의친필각자요,‘좋은경치에술이나즐기며머물겠다’라고읊은시
의내용으로보아이곳에서생을마친것이틀림없다고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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