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禮山의
박홍(朴泓)(1534~1593)
조선 중기의 무신으로 자는 청원(淸源), 호는 송담(松
潭) 본관은 울산이다. 아버지는 별제(別提)인 영무(英
珷)이며어머니는직장(直長)인정인걸의딸이다.
대흥현마사리에서출생했으며1556년(명종11년)에
23세로 무과에 합격하여 선전관. 강계부판관, 이산(利
山)군수, 의빈시도사, 정평부사, 평산부사, 도총부도사,
박홍이 살았던 것으로 추정되는 집
영암군수등을역임하고천성만호(天成萬戶)가되었다.
이어부산첨사,구성부사,만포첨사,종성부사등외직을거치는동안도서지방의도적을물
리치고오랑캐추장의항복을받아우리측남녀포로50여인과양곡수천석을돌려받았다.
1592년(선조25년)임진왜란이일어날때에는경상좌도수군절도사로서왜적의선봉을맞
아 싸우게 되었다. 그러나 군비부족과 훈련의 부족으로 우리군사는 참패를 면치 못하였다.
이에박홍은본진을불태우고파죽지세북상하는적을막기위하여죽령을지키려고패잔병
을수습하고군병을모집하였다.그러나천혜의방어진인조령의관문을신립군사가지키지
않고충주탄금대로후퇴하여적과배수진을치고싸우다전멸당하게되자박홍은죽령의방
어를포기하고서울로후퇴하였다.
그러나이미선조가한성을떠난지며칠이되었는지라행재소(行在所)를찾아가던중도원
수김명원(金命元)을만나좌위대장(左衛大將)의직에임명되어임진강방어에참여하였고,
신길(申?), 유극량(劉克良)등과 함께 병사를 나누어 파주에서 싸웠으나 신식 조총으로 무
장한왜군의적수가되지못하고참패하여평양으로탈출하였다.평양에도착하자사헌부를
위시한조신들로부터영토를지켜야할신하로서책임을회피하고군율을위반했다는죄목
으로탄핵을받게되었으나때가전시라지휘관이필요하고후퇴하는과정에서도종군한공
로가참작되어처벌은면하였다.같은해6월에평양마저왜군의수중에떨어지고순변사패
장 이일과 함께 평산으로 들어가 병사를 모으고 있었으나 여의치 않아 명의 원군을 기다리
는처지였다.당시이천에있던세자로부터호종하라는명령을받고성천까지임무를완수하
였다.그공으로우위대장,의용도대장에임명되었다.그뒤군사를이끌고수차에걸쳐왜병
과전투하였으나왜군이강하여큰공을세울수없었다.왜군도이순신의수군의활약으로
보급선이끊어지면서곤경을받게되어북진을멈추고평양부근에서 수비전을벌이고있었
다.조·명연합군의선전과전국적인의병의활동으로1월에평양이적지로부터탈환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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