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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가 실제로 아산에 거주하지 않았고 그로부터 옹(邕)까지
의 세계(世系)가 불확실하기 때문에 그의 후손 옹(邕)을 실
질적인 1세조로 한다. 묘는 음봉면 신수리 소탄동 마을의
안산, 즉 아주백산(아주박산) 중턱에 있다. 임진왜란 이후
그의 묘를 잃었다가 1858년(철종 9)에 마을 주민들의 도움
으로 묘갈을 다시 찾아서 봉분을 새로 조성한 뒤 비를 세웠
다. 단기 4288년(서기 1955)에 후손 천규(天奎)가 찬한 신
도비가 묘역 입구에 세워졌으며 1987년에 다시 묘역을 정
비해서 지금에 이르고 있다.
<이서의 묘표>
[71] 이숙감
李淑
< ? ~ ? >
조선 전기의 문신으로 본관은 연안(延安)이며 판관 말정
(末丁)의 아들이다. 자는 차공(次公), 호는 몽암(蒙庵)·양원
(楊原)이며 시호는 문장(文莊)이다. 1454년(단종 2) 생원으
로 문과에 급제한 뒤 이조참판에 이르렀으며 문명(文名)이
높았다. 성종 16년(1485)에 서거정 등과 함께f신편동국통
감(新編東國通鑑)g
을 수찬(修撰)했다. 특히 그는 1464년(세
조 10)에 세조가 속리산을 거쳐 온양에 행행(行幸)했을 때
호종(扈從)했는데 이 때‘온양팔경(溫陽八景)’
이라는 제영
(題詠)을 지어 지금까지 전하고 있다. 또한 그 당시 온양행
<이숙감이 글씨를 쓴 신정비>
궁에서 맑고 찬 샘물이 솟아나자 세조의 명으로 주필신정비
(駐 神井碑)를 세우게 되었고 1476년(성종 7)에 새로 세운
비가 지금도 온천동 온양관광호텔 경내에 전해진다. 상호군 임원준(任元濬)이 기(記)를 짓고 그가 해서(楷
書)로 글씨를 쓴 것이다.
[72] 이순경
李純慶
< ? ~ ? >
조선 전기의 문신으로 본관은 합천(陜川)이며 합천 이씨 염치 강청리 입향조이다. 합천 이씨 1세조인 강
양군(江陽君) 개(開)의 17세손이며 고려 말에 안동도호부사를 지낸 요(瑤)의 현손이고 안동부사 중경(仲
卿)의 증손이다. 판관과 낭천현감을 지낸 여심당(如心堂) 택(澤, 1425~1487)의 손자이며 생원 팽노(彭老)
의 아들이다. 어머니는 평해(平海) 황(黃)씨 윤원(允元)의 딸이다. 그의 다른 이름은 범기(範基)이고 참봉
에 제수되었다.
할아버지 택(澤)의 장인이 풍산(豊山) 심씨 심구령의 셋째 아들 풍산군 치( )이고 처가가 있는 김포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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