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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편 송전리 민재봉
閔載鳳
씨 댁에서 재차 거사 모의를 하던 주동자들은 출동한 왜병들에 의하여 검
거되었다 이들에 대한 고문과 만행은 필설
筆舌
로 다 할 수 없다 이 문초에서
모든 책임은 나에게
있다 거사계획부터 당일 시위의 주동에까지 나의 단독 행위이다 다른 사람은 죄가 없다 죄없는 무고
한 양민을 속히 석방하라 그리고 나 또한 내 조국 내 강토 내 나라를 내가 찾겠다는데 그것도 죄란
말이냐 너희는 너희나라가 남에게 빼앗겨도 그대로 보고만 있겠느냐
라고 대담하게 호령하여 모든
책임을 혼자 짊어진 투사 송재만
宋在萬
은 이로 인하여 년 징역의 언도를 받고 서대문 형무소에 투옥
5
되었다 또한 청년 행동대원이었던 김홍진
金烘辰
은 주모자를 대지 않으면 목을 자른다 고 위협했으
나 이에 굴하지 않고 항거하자 목 가죽을 군도로 베어 유혈이 낭자하였으나 끝내 주모자를 대지 않았
다 그는 이로 인하여 옥고를 치르는 동안에 목의 상처가 가중되어 사경에서 구사일생으로 살아났다
왜경들의 만행과 이에 항거한 투사들의 이야기는 일일히 적을 길이 없을 만치 많다 지면관계로 모두
기록하지 못함을 유감스럽게 생각한다.
이렇게 해서 검거된 사람은
200
명을 훨씬 넘었다 고문에 못 이겨 여독으로 송봉숙과 같은 사람은 집
에 와서 바로 죽기도 하였고 또한 기미
3 1
독립만세사건 수형공소 사건 판결문에는 형기
刑期
가 있
으나 수형인 조서에는 빠진 사람이 있는 것으로 보아 얼마든지 빠질 수가 있다.
그러나 아깝게도 공주지방법원의 판결문은
6.25
사변 때 소실되어 찾을 길이 없다하니 초심
初審
을 받
았던 지사 중에는 많은 사람이 누락됐을 것으로 추정할 수가 있다.
대호지 면사무소에 보관되어 있는 대호지만세운동 수형인 조서에는
111
명인데 이중에 초심실형 누락
예상자까지 포함시키면
173
명이나 되는 것으로 수형인들은 증언하고 있다 누락된 초심실형자 가족은
지금도 애석하게 생각하고 집필자에게 억울함을 호소하고 있다 또한 수형인 조서에 태형
笞刑
) 90
도라
할찌라도 고문은 성기고문
性器拷問
인 흑두형
黑頭刑
등 말할 수 없었으며 옥고를 몇개월씩 치렀음을
알아야 하겠다.
대호지독립만세운동으로 년후에 피검된 남정혁에 관한
2
송재만에게 증언을 요구하는 증인호출장
송재만은 당시 경성감옥에 수감중이었음
편저 박상건
唐津文化院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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