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 928페이지

464페이지 본문시작

1970년대의연산

남,
홍의선씨는1948년에연산면신암리에서태어나서국민학교3학년때연산리로이사했

다.홍씨가스물네살에제대한후에사업으로타지에계신부친을대신해서할머니와어



머니를모시고고향에서자리를잡았다.홍씨는77년부터80년대중반까지30대초반에


이장을맡았고2010년부터2023년지금까지이장직을수행하고있다.


홍의선씨는어린시절연산에서국민학교와중학교를다니고고등학교는대전으로새

5
벽열차를타고통학했다.새벽4시에일어나서4시30분에아침을먹고연산역까지기차
시간에맞춰10~15분정도뛰어갔다.학교가끝나고열차를타고집에오면저녁6시나6
시 30분이었다. 피곤한 하루하루를 보내면서 학업을 이어가야 했다. 연산역 근처에 잡상
인이십여명이상있었고다소거친사람들이기차내에서물건을갖고다니면서팔았다.
464
홍 씨의 부친은 50년대 후반부터 70년대 초번에 서울로 사업을 나가기 전까지 석유판
매업인 석유소매상을 했다. 제대 후에는 홍 씨가 72년부터 82년까지 부친을 대신해서 석
유소매상을맡았다.논산에서마차로큰드럼통세개에석유를사다가판매했다.논산에
는 주유소가 있었지만, 면 단위에는 주유소가 없고 대신 석유판매소가 있었다. 밤에 석유
가떨어지면상월면,부적면,양촌면에서도홍씨의집으로사러왔다.
50년대부터연산에는전기가들어왔으나다른지역에는없는곳이많았다.당시에는백
등유를사다가호롱불을켰고취사하기위해석유풍로를사용했다.70년대에새마을운동
으로지붕과아궁이를개량해서19공탄인연탄이공급되면서생활취사로사용됐다.전기
가 제대로 들어오지 않는 곳이 많아서 80년대 초까지 석유풍로가 쓰였다. 석유는 비싸고
10~20리를싣고가기도어렵기때문에부유한가정에서만석유가난방으로쓰였다.대부
분산에서나무를했고,추수가끝난후고춧대나깻대등농작물을말려서땠다.
연산장의개요
연산장은1911년에개설된역사가깊은전통적인시장으로매월5일과10일5일간격으
로열린다.연산장터는홍의선씨의집에서100미터정도떨어져있었다.그당시한마을
에 자전거 한 대가 있을 때여서 거의 모든 사람이 걸어서 장에 왔다. 장날이면 2차선 정도
의7미터폭인도로가사람들로가득찼다.논산,상월,부적에서사람들이오고연산은구

464페이지 본문끝



현재 포커스의 아래내용들은 동일한 컨텐츠를 가지고 페이지넘김 효과및 시각적 효과를 제공하는 페이지이므로 스크린리더 사용자는 여기까지만 낭독하시고 위의 페이지이동 링크를 사용하여 다음페이지로 이동하시기 바랍니다.
상단메뉴 바로가기 단축키안내 : 이전페이지는 좌측방향키, 다음페이지는 우측방향키, 첫페이지는 상단방향키, 마지막페이지는 하단방향키, 좌측확대축소는 insert키, 우측확대축소는 delete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