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었고,가장높은거래비중이높았던것은쌀과소가죽이었다.외부에서들어온물품은주

남,
로개항장인군산과인천을통해유입되었다.따라서수산물의유입도많았다.명태,조기,


새우젓등이대부분작은배에실려서논산천을통해논산장으로유입되었다.




논산천의풍경


한국전쟁이발발했을때이창구씨는네살이었고전쟁이끝나고여덟살에초등학교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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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학하였다. 한국전쟁 이후 논산 시장의 근간을 이룬 것은 위탁상회 덕분이었다. 그 당시
논산에는이씨의외갓집인경북상회와정확하지는않지만동아위탁상회두개가있었다.
새강다리(현대교다리)밑에배가접안했다.강경에서물길을따라들어왔다.배가들어오
는날이면위아래로흰옷을입은사람들이흰뱀이요동치는것처럼대교다리아래를가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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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웠다.배에서내린생선의일부는위탁상회와선주의집으로가져가팔렸다.뱃일꾼들이
먹고살기 위해 나머지 생선을 사람들이 가져온 콩, 팥, 쌀 등과 물물교환을 했다. 이 씨의
집에배가있었다.군산앞바다에있는고군산열도에서부터연평도까지조기가올라왔는
데 그곳에서 조업했다고 한다. 배가 들어오는 날에 다리에 나가 보면 뱃일꾼들이 조기와
곡물을교환하는것을흔히목격할수있었다.
배가접안하는장소에서부터사람의행렬은장터로죽이어졌다.그때구기민중학교가
대교동밑에있었고그앞에둠벙(논의물을대기위해지하수나빗물을가두어두는인공
습지)이 있었다. 이 좁은 골목을 따라가면 논산에서 제일 큰 시장통 거리가 나왔다. 현재
대교성당에서다리를건너오면공중화장실이있는거기서부터동쪽으로재래시장이형성
되었다.3일과8일에장이열린다고해서삼팔시장이라했고여기를아랫장터라고불렀다.
1960년대중반에이창구씨는경북상회에서일년동안근무했었다.그때배를타고강
경에서논산을오가기도했다.강경옥녀봉밑에있는접안시설에수십척의배들이오갔다.
슬레이트로지은노동조합에서조합원들이나와배에생선을싣고나르는것을확인했다.
그 옆으로 커브를 돌면 중국인들이 운영하던 냉동 창고가 있었다. 그 물길을 따라서 배가
논산천으로왔는데후에논산천대교다리밑에있던접안시설이없어졌다.논산역을지나
채운 쪽으로 고압선이 하나 있고 성동 쪽으로 가는 고압선이 하나 있었는데 토사와 흙이
쌓여배밑이얕아졌다.돛대가고압선에걸려사고가난적이있는데그이후로논산에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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