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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산효열정려지
[42] 효자 이은빈 <李誾彬>
금두꺼비 구해 아버지 병 고친 효자
조선 후기의 무신이며 효자이다. 본관은 덕수(德水)이며 충무공 이순신의 후손으로 병
마절도사를 지낸 이건수(李建秀)의 아들이다. 또 다른 이름인 자(字)는 사질(士質)이
다. 순조 임금 때에 선전관으로 무과 급제하여 1827년(순조 27)에 전라좌도 수군절도
사에 임명되었고 이후 여러 관직을 거쳐 1840년(헌종 6)에 전라도 병마절도사에 올랐다.
그는 관직에 충실하였을 뿐만 아니라 효성도 지극하였다. 아버지가 병환이 났는데 의원
이 말하기를 금두꺼비가 약이 된다고 하므로 겨울에 나가서 금두꺼비를 구해서 올렸더
니 효험이 있었다. 효행으로 효자 정려를 명했다고 하며 현재는 전해지지 않는다.
[43] 효자 이제빈 <李悌彬>
1772년(영조 48) ~ 1837년(헌종 3)
어머니 병환에 손가락 끊어 피로 효도 다해
조선 후기의 무신·효자다. 아산 출신으로 본관은 덕수(德水)고 충무공 이순신의 후손
이다. 30세 되던 1800년(순조 즉위년)에 무과에 급제하고 1835년(헌종 1) 경상좌도 병
마절도사에 올랐다. 이제빈은 불과 다섯 살의 어린아이 때 토를 달아 책을 읽을 만큼 수
재였다. 또한 효심 또한 깊었다. 아버지를 잃은 후에는 집안 형편이 기울어 어머님을 흡
족하게 모시지 못함을 항상 죄송스럽게 생각하였다. 어머니가 돌아가실 때 스스로 손가
락을 끊어 피를 드려 반나절이나 더 살아계시게 했다. 돌아가신 뒤에는 삼년상의 여묘
살이동안비가오나눈
이 오나 매일같이 어
머님의 무덤을 살폈
다. 그 효성이 극진하
여 세간의 사표로 삼
고자 1840년(헌종 6)
에 효자 정려를 내려
아산시 염치읍 백암리
의 현충사에 세웠다.
효자 이제빈 정려의
명정현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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