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 928페이지

456페이지 본문시작

양 씨의 가족도 삼거리장에서 건어물 장사를 했다. 둘째 형의 주도로 논산의 도매상으로

남,
부터 물건을 받아 장에서 팔았다. 제사를 중요한 집안 행사로 생각했던 시절이라 명태포,


문어포,민어포같은품목이잘팔렸고반찬으로자주먹는미역이나멸치도판매가잘되


었다.특히시제가많은음력10월이되면수입이평상시의몇배가되어상달이라고불렀


다. 수입금을 정산할 시간도 없어 돈을 포대에 담아두었다가 집에서 정리하던 모습을 아


직도기억하고있다.

5
연무읍의거주인구도60년대말에는42,000여명으로말그대로사람이북적이는곳이
었다. 장이 서면 2,000 ~ 3,000명이 운집해서 몸을 스치지 않고 걸어 다니기 어려울 정도
였다.소매치기들이장을찾은사람들의돈을훔치는경우도빈번했으나인력이충분치않
아경찰이상주하지는못했다.
456
대장간과국밥가게는상설로있지않고장날만장사하는이동식가게였다.지금처럼가
스를이용해서화력을얻던시절이아니고풀무로숯에불을붙여화력을높이던때라이동
하며장사하는것이가능했다.뻥튀기장사도장을찾은사람들의흥을돋우었다.
삼거리장에관한특별한기억
장날이 되면 나무 장사꾼들이 마산길에서부터 한 줄로 서 지게보다 높게 나무를 쌓아
서 가지고 오는 풍경을 이근양 씨는 잊을 수가 없다고 한다. 나무를 사고파는 일은 1970
년대만해도흔한풍경이었다.솔가지나나뭇잎도동그랗게말아장에서연료로팔았다.
장에서거래되는물건을싸주는특별한포장지는없었다.지푸라기나비료포대,회포
대(시멘트포대)등이사용되었다.생선도상인이지푸라기에묶어주었고지푸라기에묶인
그대로생선을들고다니다집으로가져갔다.
장에서장사하는상인들을대상으로자릿세도받았다.정확한금액을알기는어렵지만
상가번영회나동네이장이일정한금액을걷었다.
장이서면소규모서커스단도따라서들어오곤했다.수준높은공연은아니었다.큰공
을굴리는재주정도를보여주는내용이었으나장을찾는사람이워낙많아서구경꾼들이
모였다.적은액수의돈을걸게하는야바위꾼들도단골로장을찾는사람중한무리였다.
삼거리장에는 극장도 있었다. 연무극장이었는데 정확한 위치는 기억하는 사람마다 조

456페이지 본문끝



현재 포커스의 아래내용들은 동일한 컨텐츠를 가지고 페이지넘김 효과및 시각적 효과를 제공하는 페이지이므로 스크린리더 사용자는 여기까지만 낭독하시고 위의 페이지이동 링크를 사용하여 다음페이지로 이동하시기 바랍니다.
상단메뉴 바로가기 단축키안내 : 이전페이지는 좌측방향키, 다음페이지는 우측방향키, 첫페이지는 상단방향키, 마지막페이지는 하단방향키, 좌측확대축소는 insert키, 우측확대축소는 delete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