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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의 부인은 양천허씨(陽川許氏)로 허진(許津)의 딸이다. 4남을 두었으니 세환(世桓), 태환(泰桓),
정환(廷桓), 성환(成桓)이며 이들이 각각 4남1녀, 2남1녀, 2남1녀, 3남을 두어 후손이 매우 번창하였
다. 후손들은 선장 신동리 일대와 궁화리, 실옥동, 배방, 천안, 서울 등 각지에 퍼져 살고 있다.
박지만의 묘는 신동리와 접해 있는 선장면 선창리에 있으며, 조부 박검과 아버지 박유원의 묘소도
예산에서 옮겨와 지난 1998년에 묘역을 새로 정비하였다.
-밀양박씨 족보-
-박지만의 묘와 묘역-
[47] 온양방씨 방동귀
| 方東貴
<1693년(숙종19년)~?>
온양방씨(溫陽方氏)는 온양을 본관으로 하는 집안이며 실질적인 시조는 중시조이자 1세조인 신라
말의 방운(方雲)이다. 선대는 경상북도 상주(尙州)에 근거를 두고 있었다. 집안에 전하는 바에 따르면
견훤에 의해 집안이 참화를 당하자 방운은 고려에 귀부하였다고 한다. 그는 고려에서 좌복야(左僕射)
에 오르고 온수군(溫水君)에 봉해졌으며 온수현(溫水縣)에 와서 복거(卜居)했다고 전해진다. 묘도 배방
산에 모셔졌다.
방운의 아들 방중탁(方仲鐸)은 문과 급제 후 첨의정승에 올랐고 묘는 역시 배방산에 있다고 기록되
어 있다. 그리고 방운의 손자인 방휴(方休)는 중랑장으로서 강감찬 휘하에서 거란의 격파하는 데 공
을 세워 온양군(溫陽君)에 봉해졌으며 묘가 탕정면 장목리(場牧里-현재 명암2리)에 있다고 한다. 3
세(世)인 방휴부터 문하시랑평장사에 오른 6세 방유(方裕)까지는 묘가 장목리에 있다고 기록되어 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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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산입향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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