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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가게가섰는데장날이면학교끝나고집으로가지않고곧장장으로갔다.김용제씨도

남,
할아버지나할머니를찾아장터를돌아다녔다.한집에살고있었지만장에서만나면맛있


는것들을사주셨기때문이었다.


김용제 씨는 양촌장이 생긴 정확한 시기를 기억하지 못했지만, 양촌초등학교가 개교했


던1919년에도양촌장이있었던것으로기억한다.장이서려면연산사람들이미리곡식같


은것을양촌주민들에게사들였고공산품을팔았다.양촌양조장의역사가100년됐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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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는것으로미루어짐작해보면장은그이전부터있었을것이다.
양촌장에는대장간도두곳이나있었다.낫,호미,쇠스랑같은연장을만들어팔았는데
둑 옆에 있었고 많을 때는 3곳으로 늘기도 했다. 그게 1950년대 말에서 1960년대로 양촌
장이가장번성했던시기였다.장을이용하는사람들도500명에서600명으로,발디딜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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없이 사람들로 북적거렸다. 장옥이 6채가 있었지만 장옥에 들어가는 상인들은 규모가 큰
편이었고대개길바닥에늘어놓고옷등을파는상인이많았다.장옥한채에10명의상인
이들어가가게를벌여큰장사만해도60개가열리곤했었다.지금남아있는현대식장옥
을지은것이2000년정도로그당시만해도양촌장의규모가상당했음을짐작할수있다.
상인들이많기는했어도인근에서왔기때문에는숙박업이발달하지는않았다.장이끝
나면 마차로 짐을 싫어 돌아갔다. 김용제 씨의 아버지와 작은아버지도 장에 쌀, 콩, 마늘
등을팔았는데주로상인들이사들였다.상인들은집에서농사지은물건을가지고오는농
부들에게 물건을 싸게 사서 장에서 적정한 가격을 매겨 팔았다. 장에서 팔리는 가격을 조
절하는것은상인들의몫이었다.
사람들에게추억을선물했던장
장이서면같이따라오는사람들이있었다.약장사나동동구리모장사라고불렀는데발
로 북을 치는 사람, 춤추는 사람들이었다. 중국 사람이 운영하던 포목전 건너편에 공터가
있어자연스럽게그곳으로공연하는사람들이모였다.약장사들이파는품목도다양했다.
웅담을 가져오는 약장사도 있고 보명수라고 하던 약도 있었다. 치통에 좋은 약을 시범을
보이면구경꾼은현혹되었다.어른들을모아놓고뱀을팔기도했다.
장은인심이오가는장소였다.형편이넉넉하지는않았지만서로챙겨주는마음도느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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