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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산으로이전했다고했다.그이전까지는양촌장에서직접도축을했다.소전이사라지면



서자연스럽게도축장도없어진것이다.



1950년대와1960년대번성했던양촌장
처음양촌장이섰던장소는현재양촌면사무소,양촌초등학교,우체국이있는자리였다.
가끔이곳에난장(정해진장날외에특별히며칠간더여는장)이서기도했다.
음력으로 7월 15일 백중에는 사람들을 모으기 위해 먼저 씨름판이 열렸다. 씨름대회가
커서논산뿐만아니라공주,대전에서도사람들이모였다.한번난장이서면일주일정도
계속되었는데장정들이씨름하기전에어린아이들이시범경기를했다.‘애기씨름’이라고
부르는경기를먼저진행해사람들의흥미를끌었다.상품은상인들에게걷어서마련한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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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으로 준비하고 농악 연주 등으로 흥을 북돋웠다. 큰 볼거리가 없던 시절이라 사람들에
게인기가많았다.
1980년이넘어서건너장터가생겼다.지금의인천2리가그위치다.그때도양촌장에는
없는 것이 없었다. 양촌에서 생산되는 감, 밤, 대추뿐만 아니라 새끼 돼지나 닭도 팔았고
달걀을10개씩짚에묶어팔러나오는사람들도많았다.사람들은장이서면큰볼일이없
어도 집에 있는 것들을 가지고 장에 나와 팔았다. 팔고 받은 적은 돈으로 지난 장에 이웃
집 형님한테 얻어먹은 술을 갚으려고 찾아다녔다. 술집이 열 곳이 넘을 정도였다. 양촌에
서보기어려운삶은오징어를안주삼아먹고돈이조금남으면생선전에들러명태나조
기를샀다.짚으로묶은생선을들고집으로돌아갔다.
중국사람왕씨가운영하던포목전은현재우체국이있는자리옆이었고상설로운영했
다.상설로운영하는가게에는석유집,고깃집,국박집,약방이있었다.
양촌장을제일많이이용하는사람들은양촌주민들이었으나연산,금산,벌곡,운주,가
야곡 사람들도 양촌 생활권이라 찾아왔다. 상인들도 많이 몰려들었다. 운주에서 오는 상
인들은고추,마늘을주로가져왔다.연산에서전날마차에짐을싣고오는상인들도많았
다.운주장이1일과6일,양촌장이2일과7일,논산장이3일과8일,강경장이4일과9일,연
산장이5일과10일에열리면서다섯개의장이딱맞아돌아갔다.
김용제씨가기억하는장날은아이들에게가장신나는날이었다.국수,떡,국밥을파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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