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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전이유명했던장소
충
남,
김용제씨는대대로양촌에서살았다.대전에서사범부설중학교를다니던시절을제외
잊
하고는 부모님이 계신 양촌을 떠난 일이 없다. 양촌은 면적이 77㎢, 2023년 9월 인구가
혀
진
시
6,400명으로면단위로는큰편이다.1946년에출생한김용제씨는5살무렵인1950년대
간
을
와1960년대가양촌장이가장번성했던시기로기억한다.양촌에서공무원으로20년넘게
말
하
재직하면서양촌면장으로퇴임하고현재까지양촌에서생활하는경험과기억을바탕으로
다
5
인내장이라고도부르는양촌장에대한기억을풀어놓았다.
김용제 씨가 기억하기로 논산장보다 컸다는 양촌장에는 거래되지 않는 산물이 없었다.
양촌에는과일,곶감,대추,밤,생각,마늘,고추등모든농산물이다나왔다.논산시내에
사는사람들에게는귀하기만했던밤도양촌에서는흔했다.
444
그중에서도유명했던것이소전이다.김용제씨는금산서부터소를끌고양촌까지오는
사람들을직접목격했다.양촌면반암리에물한이재가있는데그재를넘으면벌곡면도산
리로갈수있고도산리를지나면바로금산군진산면이었다.20㎞정도되는먼거리를소
를끌고이동해야했지만,양촌장이커사람들이많이찾아왔다.
친구아버님중에도소를사고파는일을하는분이계셨다.그분도다른지역에서서는
장에가기위해밤이되면양촌에서소를끌고출발하곤하셨다.주로금산의장에소를내
다파셨다.가까운양촌장에소를내지않고금산까지가는이유는양촌소가인기가좋아
서였다. 양촌 소가 유명했던 이유는 예전엔 강변에서 소를 풀어 먹였기 때문이었다. 강변
의풀을실컷먹고자란소는품질이좋았다.강변이소들로꽉차서벌겋게보일정도였다.
한동네에50호정도의집이있다고하면30호정도는소를키웠다.집마다소를애지중지
돌봤다.남편이밖에나갔다돌아오면제일먼저부인에게물어보는말이“소밥줬어?”라
고할정도였다.함께모시고사는어른의안녕을확인하지않고소가잘있는지를먼저물
었다고 한다. 그 정도로 귀하게 돌봐서 양촌 소는 도체율이 높다고 소문이 났다. 같은 근
수의소를사도양촌소는고기가많이나온다는얘기가돌면서시장에서인기가많았다.
소전에 소가 많을 때는 200마리까지 나왔다. 소를 묶어 놓으면 말뚝세라는 것을 받았
다. 말뚝세를 헤아리면 장에 나오는 소의 수를 대략 알 수 있었다. 소전 옆에는 도축장도
있었다.김용제씨는정확한연도는기억하지못했지만1975년혹은1980년도에도축장이
충
남,
김용제씨는대대로양촌에서살았다.대전에서사범부설중학교를다니던시절을제외
잊
하고는 부모님이 계신 양촌을 떠난 일이 없다. 양촌은 면적이 77㎢, 2023년 9월 인구가
혀
진
시
6,400명으로면단위로는큰편이다.1946년에출생한김용제씨는5살무렵인1950년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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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1960년대가양촌장이가장번성했던시기로기억한다.양촌에서공무원으로20년넘게
말
하
재직하면서양촌면장으로퇴임하고현재까지양촌에서생활하는경험과기억을바탕으로
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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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내장이라고도부르는양촌장에대한기억을풀어놓았다.
김용제 씨가 기억하기로 논산장보다 컸다는 양촌장에는 거래되지 않는 산물이 없었다.
양촌에는과일,곶감,대추,밤,생각,마늘,고추등모든농산물이다나왔다.논산시내에
사는사람들에게는귀하기만했던밤도양촌에서는흔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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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중에서도유명했던것이소전이다.김용제씨는금산서부터소를끌고양촌까지오는
사람들을직접목격했다.양촌면반암리에물한이재가있는데그재를넘으면벌곡면도산
리로갈수있고도산리를지나면바로금산군진산면이었다.20㎞정도되는먼거리를소
를끌고이동해야했지만,양촌장이커사람들이많이찾아왔다.
친구아버님중에도소를사고파는일을하는분이계셨다.그분도다른지역에서서는
장에가기위해밤이되면양촌에서소를끌고출발하곤하셨다.주로금산의장에소를내
다파셨다.가까운양촌장에소를내지않고금산까지가는이유는양촌소가인기가좋아
서였다. 양촌 소가 유명했던 이유는 예전엔 강변에서 소를 풀어 먹였기 때문이었다. 강변
의풀을실컷먹고자란소는품질이좋았다.강변이소들로꽉차서벌겋게보일정도였다.
한동네에50호정도의집이있다고하면30호정도는소를키웠다.집마다소를애지중지
돌봤다.남편이밖에나갔다돌아오면제일먼저부인에게물어보는말이“소밥줬어?”라
고할정도였다.함께모시고사는어른의안녕을확인하지않고소가잘있는지를먼저물
었다고 한다. 그 정도로 귀하게 돌봐서 양촌 소는 도체율이 높다고 소문이 났다. 같은 근
수의소를사도양촌소는고기가많이나온다는얘기가돌면서시장에서인기가많았다.
소전에 소가 많을 때는 200마리까지 나왔다. 소를 묶어 놓으면 말뚝세라는 것을 받았
다. 말뚝세를 헤아리면 장에 나오는 소의 수를 대략 알 수 있었다. 소전 옆에는 도축장도
있었다.김용제씨는정확한연도는기억하지못했지만1975년혹은1980년도에도축장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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