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는개인택시처럼이용되었고광복이후까지이동수단으로도쓰였다.



마차조합의 끄트머리 우측에 대장간이 있었다. 칼, 호미는 물론이고 말발굽 등을 만들

었다.대장간옆에말발굽을달거나교체해주는곳이있었다.말발굽을다는것을신신기


기라고했다.말의발에있는굳은살을다듬고말굽을다는것이신기했지만,말이느끼는
고통에안쓰러움이일었다.
강경성당 옆에 있는 지금의 태평식당 뒷골목을 섬말고삿이라고 불렀다. 거기에 중국집
화학루를 비롯해서 중국 음식점이 쭉 있었다. 중국집 뒤로 양탄자와 비단을 파는 가게들
이자리했다.
섬말고삿이라는이름에서알수있듯이강경성당옆이섬이었다.60년대후반까지양쪽
으로물이흘렀고현재노동조합앞도강이었다.김무길씨가중학생일때뒷집에사는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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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득 씨가 마지막에서 두 번째 노동조합장을 맡았었다. 대흥천을 따라 배가 들어왔고 이
곳을 뱃전, 서편 또는 세편이라고도 불렀다. 조금 때는 배가 약 열 척쯤 들어오고 사리 때
는무척많이들어왔다.배와육지사이에널빤지를놓고망태기에생선을담아목도를메
서 내렸다. 두 사람이 목도로 생선을 배에서 내리는 광경을 지켜보는 것만으로도 지루하
지 않았다. 큰 생선은 마리당으로 팔고 조기 같은 작은 생선은 멍석 위에 놓고 되나 말에
담아서또는저울에달아팔았다.장날과상관없이뱃전이섰지만,장날과겹칠때는더욱
붐벼서다니기어려웠다.
5월말에서6월초에생선이가장풍성했다.새우는물론이고황새기(황석어)가제철이
었고 홍어, 상어, 갈치 등이 흔한 시기였다. 파장에 장꾼이 상어나 홍어를 지게에 메고 갈
때꼬리가땅에질질끌려가곤했다.이때는개도돈을물고다닌다고했다.생선비린내가
묻은지폐가먹을거리인줄알고물고간다는뜻으로,그만큼돈이흔하다는뜻이다.이당
시에는집집마다새우나황새기로젓갈을담가여름내내반찬등으로먹고,남은것은가
을에김장할때쓰였다.가을에젓갈끓이는냄새가골목마다진동했다.
오일장이외에상설시장도있었다.윗장터강경극장앞에서ㅌ자길로중앙동을내려와
서 중앙장로교회까지 장이 섰다. 상설시장으로 인해 태평식당이 있는 골목이 늘 복잡했
다. 또한 1955년 개설된 상가건물형 전통시장인 대흥시장이 점점 사람들의 발길을 끌어
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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