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 228페이지

44페이지 본문시작

구히 하고 또 항상 자손들에게 삼가고 실수 없이 하라 경계하였으며 대개 그 선조의 묘소
가 칠대로부터 전하여 육 오 삼대까지 묘소가 유곡면 달안리 유좌향으로 하고 그 조고양위
는 농기곡면 자우치 묘좌유향하니 그 산기슭의 죄룡묘좌이다. 증조 쌍봉 우측아래 묘좌에
있고 조부는 조모와 합부하였다. 그 후 부친은 본주 남면 고접리 경좌로 장사지내고 모친은
덕산 나박소 낙천리 사좌에 장사지냈다. 지금 영식과 승환이 자세히 기록하기를 청하였다.
후손이 그 연고를 이와 같이 쓰니 공은 임오생정월 사일이요 경신년에 무과에 급제하고 경
오년에 절충부호군 증호참 아들은 영장으로 추영하고 정축년 유월 이십칠일에 운명하니 번
천면 가곡리 정좌에 장사지내다 공은 부인 경주이씨 명복의 딸로서 두 아들을 두었으며 장
자는정식무과에급제하였고공주영장차자는영식무과에급제하여오위장(五衛將)이다.
정식은 전실 박씨에서 넷의 딸이 있으니 신평 이민성에게 출가하고 통천 김재악 청주 이
한영 보성 오성호 후실에서 세 아들을 두었으니 승환주사 친자 성환교관 셋째는 경환이라.
영식의 아들 일환이 또한 주사가 되었다. 오호라 공과 같은 즉 고인이 칭한바 선인이라 삿
됨이 없었다. 역에 이르기를 적선 한 집안에는 경사가 있다고 하였으니 영식과 승환의 사
람됨을 보건데 사람됨이 족히 연경(延慶)의 싹이 있으리라. 아! 주자께서 비석의 명문은 많
이 하지 않는바 두 자를 써주니 무실(務實 : 성실함에 힘쓰라는 말)이다. 비석의 명(銘)이 부모를 나
타내는 것은 효 아님이 없다. 또 몸소 선행하는것만 같음이 없다 하셨다. 부조(父祖)가 대효
(大孝)가 되었다고 이름함이라. 이 뜻을 영식과 승환에게 더욱 가히 알지 않을 수 없다하고
드디어 비명을 지어 말하길, 오호라 적선한 묘소여 예부터 들린 묘가 이 묘소이라. 오호라
적선한묘소여.
황상즉조(고종황제가즉위한해) 사십일년갑진(1904년)
이월통정대부전행승정원우부승지겸경연참찬관춘추관수찬영응후인이설찬
가선대부행병조참판동지의금부사월성후인김문제씀
배(配) 정부인경주이씨묘소는별도로유곡면계월리갑좌향에있어추서함.
44_홍성의금석문

44페이지 본문끝



현재 포커스의 아래내용들은 동일한 컨텐츠를 가지고 페이지넘김 효과및 시각적 효과를 제공하는 페이지이므로 스크린리더 사용자는 여기까지만 낭독하시고 위의 페이지이동 링크를 사용하여 다음페이지로 이동하시기 바랍니다.
상단메뉴 바로가기 단축키안내 : 이전페이지는 좌측방향키, 다음페이지는 우측방향키, 첫페이지는 상단방향키, 마지막페이지는 하단방향키, 좌측확대축소는 insert키, 우측확대축소는 delete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