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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산의 서원 역사와 서원 복원의 필요성
회암서원의배치좌향은위패를모시는사당을배치한묘당공간이
서북향인점을고려해보면진좌술향(辰坐戌向)인듯하다. 사당에는보
통한사람의위패를봉안하는데, 이를주향(主享)이라고한다. 그밖에
2~4명의위패를같이봉안하기도하는데, 이를배향(配享)이라고부른
다. 이때배향자들은주향에가까울수록그리고주향의왼쪽이오른쪽
보다 상위가 된다.
회암서원은 주자(朱子)를 주향으로 하고 정존재 이담(靜存齋 李擔:
1510~1574), 야곡 조극선(冶谷 趙克善: 1595~1658), 취암 이흡(醉菴
李洽: 1549~1608), 풍애 안민학(楓厓 安敏學: 1542~1601)을 배향한
미사액 서원이다.
배향 인물을 대략 구분해보면 옛 덕산 출신은 3명이고 안민학 선
생은 이 지역과 연고
가 깊다. 배향 인물의 연배가 16세기 인물로
9)
비교적 높은 편이다. 또 하나의 특징은 기호학풍을 일으키고 학맥을
이은이 고장출신의 유현을 배향해 학문적 자존심과 지역향촌사회
의 위상을 세웠다는 의미
가 있다. 이담, 이흡등과 같이 문과 급제
10)
하였던 만큼 관료로서의 활동에도 적극 참여한 인물이었다. 관직을
떠난 후에는 향촌에서의 후진 양성과 사족 생활에 만족했던 인물들
이었다.
9) 풍애안민학은25세에박순(朴淳)에게나아가사제관계를맺은뒤, 이이(李珥)·
정철(鄭澈)·이지함(李之?)·성혼(成渾)·고경명(高敬命) 등과 교유하였다. 1583
년에사헌부감찰이된뒤, 관례에따라외직으로나아가3년간대흥(大興) 현감
을 지내면서 예산 지역 선비들과 교유 관계를 맺었다.
10) 조선후기예산지방의각지방사족들이 중심이되어 운영하는해당지역의
향촌사회의 지배 질서 재편과 향권(鄕權)의 동향 문제를집약적이고 소상하
게 밝혀줄 수 있는 근거를 찾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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