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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경장속으로

남,
김무길씨는1942년에강경성당골목에서태어나서중앙초등학교근처로이사한후현

재까지 거주하고 있다. 그는 어린 시절에 장이 서는 날이면 놀이터에서 놀듯 장터에서 즐



거운 시간을 보냈다. 김무길 씨는 성인이 된 후 초등학교 교사로 강경과 인근 지역에서 근


무하면서강경장의변화를목도했다.그의이야기를통해옛강경과강경장의다채로운모


습이생생하게그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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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경은100여년전에평양,대구와함께조선3대시장중하나였다.조선은외적침입을
방지하기위하여영남과호남,관동과영동의대로를제외하고는육로를발달시키지않았
다.반면에한강,금강,대동강에인접한고을이발달하였다.금강의줄기에자리한강경은
성장과발전을이뤘다.강경장은4·9일이다.한때는3·8일인논산장이서는날에비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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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와서논산과바꿔장이열린적도있었지만언제부터4·9일로고정되었다.
강경장은크게번성하였고장날연무대에서둑을따라서흰옷을입은사람들의끝없는
행렬은장관이었다.부여반조원과석성,갓개(양화),입포,세도등에서거룻배를타고와
서서편에정박하고장을보았다.전라도망성,낭산,여산,용안,함열등에서달구지를타
고왔다.
60년대중반에서70년대초반까지강경의인구가약3만정도였는데,장날에강경에모
인 사람들이 대략 5만이었다고 한다. 한일은행 쪽, 다음에 중앙동 쪽, 그다음에 강경상업
고등학교에서내려가는본정통인성결교회길그리고강가쪽으로난길을전체적으로옥
녀봉쪽에서보면ㅌ자형이다.장날이면각각의길마다사람에치여서못다닐정도였다.
강경장은윗장터인상시장과아랫장터인하시장두곳에서열렸다.상시장의규모가커
져포화상태가되자1910년쯤에하시장이형성됐다고한다.상시장은지금은사라진강경
극장뒤편인홍교리와옥녀봉이있는북옥리에섰고하시장은강경구연수당건재약방(이
하연수당건재약방)이있는중앙리일원과배우강부자씨가살았던집근처에섰다.하시
장이더늦게형성되었지만,장의규모가상시장의두배이상으로커졌다.윗장터와아랫
장터에서 거래되는 물품이 달랐다. 윗장터는 주로 곡물과 가축, 옹기 등이, 아랫장터에서
는포목,잡화,주물솥,죽제품등이거래되었다.또한아랫장터에연수당건재약방,남일
당등한약방이있었다.배가들어오는뱃전이라는곳에서는생선과건어물등이팔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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