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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조부모와 같은 밥상에서 밥을 먹었는데 먹기 싫어하는 보리밥을 할아버지가 드시
고, 당신의 밥을 손자에게 주었던 일이 많았다. 또 밖에서 사고를 치고 와서는 부모에게
분명히 혼날 것이 두려워 할아버지가 계시는 사랑방에 숨었던 일도 있었다. 그렇게 손자
를아끼셨던할아버지는그가초등학교입학전에돌아가셨다.
아버지는 삼형제의 막내인데 큰아버지는 큰집에 양자로 들어가셨고, 둘째큰아버지는
일찍 돌아가신 데다가 둘째큰어머니도 재가하는 바람에 아버지가 사촌들까지 건사하면
서 실제적인 집안의 장남 역할을 도맡았다. 아버지도 할아버지처럼 인자하고 정이 많은
분이어서집을보수하거나수리해야하는데도돈이없어서못하는집에서며칠씩무료로
집을고쳐주었다.
그는 집에서 3킬로미터 정도 떨어진 두마초등학교를 졸업하였다. 당시 큰집의 사촌형
이 대전고무공장 총무부장으로 있으면서 때로는 어머니를 비롯한 식구들에게 고무신을
가져다주었다. 그때 당시 고무신은 매우 귀한 것이었다. 해방 무렵에는 당시 마을 일을
보던아버지가배급으로콩깻묵을가져와서그것을먹기도했다.
초등학교 4학년 무렵에 6·25전쟁이 났는데 학교가 폭격을 맞아서 김장생 고택에서 수
업을 받았다. 또 무엇을 잘못했는지 기억에는 없지만 선생님이 발가벗겨서 학생들 앞에
벌을세우기도했다.
두마초등학교를 졸업하고 연산중학교에 입학하였지만 형이 군대에 입대하는 바람에
집안의 농사일을 돕기 위해 1년을 휴학했다. 중학교 때 통학은 두계역에서 연산역까지
통근열차를 타고 다녔는데, 통학패스 끊으라고 받은 돈을 친구들과 함께 빵을 사먹고
20여 리 길을 걸어 다녔다. 그런 덕에 중학교에서 마라톤 선수로 활동하였다고 한다. 고
등학교는공부하기싫어서진학을포기했다.
그의 아버지가 장가를 일찍 보내려고 하여 열아홉 살 때부터 중매를 열여섯 번이나 봤
다. 그 중에 당시 논산군 광석면 항월리에 사시던 장인어른이 그를 어떻게 잘 봤는지 나
중에 인연을 맺게 되었다. 본래 그는 군대 갔다 와서 직장도 잡은 연후에 천천히 결혼하
려고하였는데회갑을앞둔아버지의강권으로우여곡절끝에결국결혼하였다.
계룡시 4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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