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 228페이지

43페이지 본문시작

증가선대부호조참판겸동지의금부사
행절충장군용양위부호군장군묘갈명병서
옛적에 주선생(주자)이 남강에 부임하셔서 황폐된 정부를 수리하고 백성이 병들고 유랑하
는 자가 없게 하고 특별히 직비각(直 閣 : 벼슬 이름)을 제수하니 선생이 권출에 앞서 속인(粟人
: 벼슬 이름) 추은(推恩 : 병사나 수사가 부친에게 加資 하는 일)치 아니했다 하여 세 번이나 사양하고 급
기야 속인(粟人)에게 추인한 연후에야 비로소 직책을 받았다. 어진 군자의 마음을 가히 알만
하다. 근세에 병년과 정년에 크게 흉년이 나 옛날에도 드문 바라 내포가 더욱 심했다. 그때
에 홍주인 장공 윤흥이란 사람이 있어 논을 팔아서 쌀을 사 주린 백성을 구제하고 전후 수
천의 공포(公布 : 저포로 세금을 내는일)를 거두지 아니하였으니 일천여 호가 되었다. 공이 이를 변
세하여 대납했다. 이뿐만 아니라 권출자로 본루목사 및 감사어사가 서로 포상하여 한 고을
의 의사(義士)로 비석을 세워 그 행적을 기록하니 임금께서 홀로 듣지 못하다가 들으시고 추
은이 어떻겠는가 하니 내가 사람들과 더불어 병정년을 말하니 이로써 탄식하였다. 지금 그
아들 영식과 손자 승환이 내게 뵙고 내가 비석문을 명하니 어찌 글을 참을 수 있겠는가. 도
암 이선생(도암이재)가 말하기를 선행하고 나타낸 것은 진실로 효이다. 내가 어찌 그 모두를
말하겠는가. 이에 글로써 상고하건데 공의 자는 치순(致諄) 본관은 결성 청계공하(夏)의 후손
이다. 부친 기사(箕士) 증호조참의요, 조부는 술철 증장악정이다. 대대로 홍주의 지정리 후
로 이사했다. 공은 미질로 남다른 아이로 태어났으니 보는 자가 기이하다고 하였다. 십일
세 정년에 아버지 상을 망하여 몸노예로서 치상하고 어머니 송씨 상에는 지극한 효로써 하
였다.
조금도옆을떠나지않고매야에세번씩침수안부를살피었다.
거상시엔 시묘 삼년을 하였다. 가난한 집안을 화목하게 하고 빈궁한 교우들에게도 두텁
게하며 재물을 가벼히 하고 베풀기를 좋아하였다. 하늘에서 낸 성품으로 법도를 검약하고
식사는 주림을 채울정도로 하고 옷은 몸을 가릴 따름이었다. 급기야 병이 들어서도 세수
양치와 의복을 갈아입는 일을 손수하고 편안히 슬픈 기색이 없이 운명하였다. 들으니 공
은 평일에 중용 대학을 읽기를 좋아하니 이것은 독서의 공이다. 또 들으니 공은 일생에 선
영의 묘소에 정성을 다하고 다사당을 지어 위패를 모시고 토것을 쌓아 사당법도에 맞게 영
홍성의금석문_43

43페이지 본문끝



현재 포커스의 아래내용들은 동일한 컨텐츠를 가지고 페이지넘김 효과및 시각적 효과를 제공하는 페이지이므로 스크린리더 사용자는 여기까지만 낭독하시고 위의 페이지이동 링크를 사용하여 다음페이지로 이동하시기 바랍니다.
상단메뉴 바로가기 단축키안내 : 이전페이지는 좌측방향키, 다음페이지는 우측방향키, 첫페이지는 상단방향키, 마지막페이지는 하단방향키, 좌측확대축소는 insert키, 우측확대축소는 delete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