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좌 되어 귀양을 가게 되었다. 그 아들이 상소를 올려 고향으로 돌려 보내줄 것을 애
원하므로 그를 고향으로 보내자는 논의가 있었다. 그러나 선생은 황정욱이 지은 죄
는 윤리와 기강에 관련 된 것이므로 절대 용서할 수 없다고 고집하였다.
강, 채 , 문, 세 사람이 옳지 못한 방법으로 뇌물을 받아 체포되어 심문을 받았다. 당
시의 의논들은 모르고 저지른 죄니 용서해 주자고 하였다. 그러나 선생이 말하기를,
“뇌물을 받았는데 어떻게 용서해 줄 수 있단 말이냐?”
하고 매우 엄하게 다스렸다.
대사헌 강첨은 평소에 선생과 잘 알고 지내는 사이였다. 하루는 일가친척인 그 아
우의 면책을 위하여 선생을 찾아 왔다 아무 말도 하지 못한 채 눈물만 흘리다가 돌
아갔다. 선생은 의논을 하면서 주장하기를 더욱 확고하게 했던 것이다.
계미 년 중간에 송, 허 등 여러 사람이 율곡을 탄핵하며, 중이라고 까지 비방했다.
선생은 이것을 잘못이라 하여,
“이는 군자의 말이 아니라.”
하였다. 그 뒤 회재와 퇴계 두 선생이 정인홍에게 모함을 받아 안과 밖의 많은 선비
들이 서로 글을 올려 변론하는데, 말의 내용이 몹시 허황되어 남쪽에 있다는 커다란
바다까지 미칠 지경으로 심했다. 이에 선생이 말하기를,
“이는 장사치와 아녀자들이 다투는 말과 같다. 어찌 커다란 몸뚱어리가 없는가. 두
선생의 도가 크고 덕이 높은 것을 밝히면 간사한 말들은 저절로 없어질 것이다. 남
쪽에 있다는 커다란 바다에 은둔한 높은 지조 또한 가히 버릴 수가 없다.”
하였다.
정인홍이 수우당의 묘비에 새길 글을 지어서 선생이 계신 곳으로 보내면서 말하기를,
“수우당도 역시 공과 의리로서 벗하였으니, 원컨대 공의 글을 받고자 합니다.”
하였다. 그러나 선생은 사양하기를,
“나는 이미 늙어서 글을 쓸 수가 없다.”
하였다. 이는 정인홍의 사람됨을 하찮게 여긴 까닭이었다.
역적 정여립은 선생과 같은 해에 사마시에 합격한 사람이다, 남쪽으로 가는 길에
수원부에 있는 선생을 찾아왔다. 화제가 주자(朱子)에게 미치자,
“회암(晦庵)이 수학(數學)에는 밝지 못했다.”
아산의 神道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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