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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되어김기흥의가업을이었다.집안을지키느라고남들처럼대학도못가고칠순양어머

남,
니를모시면서고향을떠나지못했다.30대중반인1973년통일주체국민회의대의원에당


선된 이래 충남도 도의원을 거쳐 1995년부터 2002년까지 서산시장을 지냈다. 여러 차례


선거를 치렀는데 경쟁이 되지 않을 정도로 모두 당선되었는데, 그 공을 조상 덕이라고 다


음과같이술회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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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상기:어떤점에서그렇게경쟁이안될정도였나요?
김기흥:그건하나의가문의덕이지.가문의덕.첫째우리양어머니가굉장히후덕하신
분이에요.그래서노인들거의다식량없고밥굶고배고플때우리집에와서다살았
어요.많이살았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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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상기:많이베푸셨군요.
김기흥 : 그리고 우리 생가 할아버지가 계셨는데 그러니까 이웃이서 살았으니까. 우리
할아버지는식전이면일찍일어나셔서단장짓고동네한바퀴돌아요.봄같은때는아
무개네집밥못먹더라.일꾼시켜서쌀갖다주라고하면우리어머니는또그걸왜갖
다주라고하느냐고또뭐라고하시며싸워가면서도전부일꾼시켜서그걸돌려.
김상기:그러셨군요.
김기흥 : 이제 그런 덕이.. 나 잘해서가 아니라 소문이 날 거 아니에요. 그래서 다 조상
덕이지.』
애국지사의아들김기흥은충청남도도의원과서산시장등공직에재직하면서많은업
적을 쌓는 등 부친의 가업과 독립정신을 계승하여 국가와 사회 발전을 위해 헌신하였음
을알수있다.또한자식교육에도힘써아들김석호(1972~)는서울대학교사회학과교
수로, 큰딸은 영화진흥공사 본부장 등으로 활동하고 있다고 한다. 앞으로 가문의 역사와
부친의 독립운동 사항들을 자료를 보완하여 좀 더 상세한 기록으로 남기는 작업을 추진
하기를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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