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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아들이 없어서 사촌 수임(壽壬)의 둘째아들 세필(世
, 1644~1699)을 계자로 맞아 대를 이었
다. 선전관을 지낸 박세필은 외아들 통덕랑 천주(天籌, 1680~1734)를 두었다. 효자로도 이름이 있는
박천주까지는 외아들 양소(良素, 1709~1782)를 두었지만 그 후대부터는 점차 후손이 늘어 오늘까지
송악면 일대를 중심으로 크게 번창해왔다.
박수현의 묘소는 송악면 거산리 용두원에 있으며 후손들의 묘도 거산리 일대에 많다.
[43] 밀양박씨 박신지
| 朴愼之
< ?~? >
조선 중후기의 인물로 밀양 박씨(密陽朴氏) 규정공파(糾正公派) 아산시 지역 영인면 신봉리 입향조
이다. 규정공의 13세손이다. 아버지는 박한명(朴漢明)이며 어머니는 안동김씨(安東金氏)이다. 성균관
진사를 하였다. 부인은 경주박씨이다.
집안에 전해지는 이야기에 따르면, 광해군 때 밀양박씨 규정공파 집안의 어느 분이 정치를 잘 하라
고 직언(直言)을 하였는데 그에게 사약이 내려 진 것을 누군가가 미리 알려주어 자결하였다. 그 일로
인하여 그 일가가 뿔뿔이 헤어지게 되었는데 그 중 한 분인 박신지가 영인면 신봉리로 낙향하게 되었
다고 한다. 약 400년 전의 일이다. 박신지의 묘는 신봉리 고용산 분곡(粉谷) 종중 묘역에 있다.
[44] 박자오
| 朴子晤
<1417년(태종17년)~1465년(세조11년)>
조선 전기의 문신으로 밀양박씨(密陽朴氏) 규정공파(糾正公派) 8세이며 규정공파 아산시 영인면 신
현리 입향조이다. 그의 선대는 주로 경기도 고양 원당 지역에 연고를 두고 있다. 현재 신현리에 거주
하는 후손 24세(世) 박노숙(朴魯淑, 70세)씨의 16대조이다.
고조는 고려 말에 호조전서를 지낸 박침(朴
)이고 증조는 문과급제 후 공양왕 때 집현전 제학을 지
낸 박강생(朴剛生)이며 조부는 호군에 오른 박의문(朴疑問)이다. 아버지는 문과급제 뒤 대제학을 지
낸 박광후(朴光厚)이고 어머니는 전주이씨로 춘성군(春城君) 이겸(李謙)의 딸이다.
박자오의 자는 교연(皎然)이다. 1439년(세종21)에 양성현감으로 나아갔고 그 후 문과에 급제한 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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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산입향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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