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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지:@내지 09. 05. 14 오? 2:33 페이지 38
공주의 전통마을을 찾아서
홍길동 산성 남쪽 부분의 모습
을 공동으로 올려지는 산신제다. 더구나
열두 고랑 일곱 동리 산신제로 일컬어지
는 이 산신제에 한천리 주민들 중에는 참
홍길동의 본거지였다는 홍길동의 굴
여하는 사람이 없었다.
우성면 내 금강으로부터 한천리에 이
들이 신령스러운 산신에게 제사를 올리
르는 6개 마을 즉 신흥리, 도천리, 내산1
는 마을이라 하여 영천으로 불렀다는 것
리, 내산2리, 월미리에서 구성된 산신제
이다. 한천리에는 양반이 없어서 양반들
를 올리는 계모임에서 산신제를 올렸는
이 부르는 이름을 거부하지 못한 것인데
데 6개 마을 주민 모두가 함께 한 것이
당대에 권세를 누리던 한씨 일문의 선산
아니라 이 마을에 사는 양반들로 구성되
이 생기면서 힘에 의하여 한산으로 바뀌
어 있었다는 것이다. 그러던 것이 1900
었다는 것이다. 문제는 아직도 이 마을의
년대 들어서면서 한천리에서도 이 산신
노인 일부는 기회가 된다면 이 마을의 이
제를 함께 올려야 할 권리가 있음을 주장
름을 영천으로 바꾸어야 한다고 주장하
하는 사람들이 생겨났고 처음에는 단 2
거나 생각하고 있고 이 마을 사람들이 부
가구만 이 모임에 함께하여 산신제를 올
르는 마을 안의 지명은 한산을 거의 사용
리다가 4가구로 늘어났다는 것이다. 이
하지 않는다. 마을 상단 한산을 <윗영천>
러한 사실과 지명과의 관계에 관하여 노
영신암터 오르는 부분을 <중간영천>으
인들이 증언하는 바는 이렇다. 한산이라
로, 독장골 부근을 <아랫영천>으로 부르
는 지명이 붙여지기 전에는 지역의 양반
고 있다.
MAY/JUNㆍ
2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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