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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산효열정려지
[37] 효자 윤취은 <尹就殷>
1518년(중종 13) ~ 1593년(선조 26)
토정 이지함도 칭송한 효행
조선 중기의 효자이며 본관은 신녕(新寧)이다. 아버지는 윤세형(尹世衡)이고 어머니는
여흥(驪興) 김(金)씨이다. 그의 다른 이름인 자(字)는 빙경(聘卿)이다. 부인은 경주 이
(李)씨이다. 그는 어려서부터 지극한 효성으로 부모를 섬겼다. 부친의 나이 팔십 세가 지
나서 눈이 어두워 아무 것도 보지 못하니 그는 잠시도 옆을 떠나지 않았다.
날씨가 몹시 더운 때에는 길가의 소나무 그늘로 모시고 나와 시원하게 해드리며 늘 함께
앉아 있었다. 선조 때에 암행어사 유근(柳根)이 아산 땅에 왔다가 마침 그가 훌륭한 음식
으로 부친을 봉양하는 것을 목격했다. 마음에 깊이 탄복한 암행어사는 조정에 돌아가 그
사실을 보고했다.
그리하여 그에게 효행으로 특별히 광릉참봉(종9품)의 벼슬을 내려주었으나 그는 끝내
사양했다. 그 뒤에도 창릉·집경전·건원릉참봉 등을 제수했으나 모두 나아가지 않았
다. 아산현감 토정 이지함(李之?)도 역시 그의 효행을 칭송했다.
[38] 효자 이문우 <李文宇>
효자의 애절한 심정‘호천망극’암송으로 달래다
조선 후기의 문신이며 효자이다. 본관은 전주(全州)이다. 자는 공칠(公七)이고 호는 화
암(華庵)이다. 유교경전에 밝고 행실을 바르게 익혀서 몸가짐이 늘 단정하고 엄숙했다.
더불어 부모에 대한 효성과 형제간의 우애가 돈독했다. 공주에 가서 벼슬하느라 효도를
다하지 못하자 과거 준비를 그만두고 관직에 대한 뜻을 접었다. 그리고 효자의 애절한 심
정을 읊은《시경》
‘요아(蓼莪)편’
을 날마다 암송했다. 그의 병이 심해졌지만 오히려‘호
천망극(昊天罔極)’
의 구절을 암송하며 목이 메었다. 부모님이 살아 계실 때 제대로 모시
지 못하였음을 평생토록 한탄하며 돌아가신 부모님을 애틋하게 그리워하였다.
[39] 열녀 덕수 이씨 <李氏>
40일 밤 남편 빈소찾아 울다 숨을 거둔 열녀
조선 후기의 열녀이다. 본관은 덕수(德水)이고 이태수(李泰秀)의 딸이다. 신창 맹씨 가
문의 맹흠인(欽仁)의 부인이며 늘 남편을 공경하며 생활하였다. 남편이 병을 얻자 지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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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7] 효자 윤취은 <尹就殷>
1518년(중종 13) ~ 1593년(선조 26)
토정 이지함도 칭송한 효행
조선 중기의 효자이며 본관은 신녕(新寧)이다. 아버지는 윤세형(尹世衡)이고 어머니는
여흥(驪興) 김(金)씨이다. 그의 다른 이름인 자(字)는 빙경(聘卿)이다. 부인은 경주 이
(李)씨이다. 그는 어려서부터 지극한 효성으로 부모를 섬겼다. 부친의 나이 팔십 세가 지
나서 눈이 어두워 아무 것도 보지 못하니 그는 잠시도 옆을 떠나지 않았다.
날씨가 몹시 더운 때에는 길가의 소나무 그늘로 모시고 나와 시원하게 해드리며 늘 함께
앉아 있었다. 선조 때에 암행어사 유근(柳根)이 아산 땅에 왔다가 마침 그가 훌륭한 음식
으로 부친을 봉양하는 것을 목격했다. 마음에 깊이 탄복한 암행어사는 조정에 돌아가 그
사실을 보고했다.
그리하여 그에게 효행으로 특별히 광릉참봉(종9품)의 벼슬을 내려주었으나 그는 끝내
사양했다. 그 뒤에도 창릉·집경전·건원릉참봉 등을 제수했으나 모두 나아가지 않았
다. 아산현감 토정 이지함(李之?)도 역시 그의 효행을 칭송했다.
[38] 효자 이문우 <李文宇>
효자의 애절한 심정‘호천망극’암송으로 달래다
조선 후기의 문신이며 효자이다. 본관은 전주(全州)이다. 자는 공칠(公七)이고 호는 화
암(華庵)이다. 유교경전에 밝고 행실을 바르게 익혀서 몸가짐이 늘 단정하고 엄숙했다.
더불어 부모에 대한 효성과 형제간의 우애가 돈독했다. 공주에 가서 벼슬하느라 효도를
다하지 못하자 과거 준비를 그만두고 관직에 대한 뜻을 접었다. 그리고 효자의 애절한 심
정을 읊은《시경》
‘요아(蓼莪)편’
을 날마다 암송했다. 그의 병이 심해졌지만 오히려‘호
천망극(昊天罔極)’
의 구절을 암송하며 목이 메었다. 부모님이 살아 계실 때 제대로 모시
지 못하였음을 평생토록 한탄하며 돌아가신 부모님을 애틋하게 그리워하였다.
[39] 열녀 덕수 이씨 <李氏>
40일 밤 남편 빈소찾아 울다 숨을 거둔 열녀
조선 후기의 열녀이다. 본관은 덕수(德水)이고 이태수(李泰秀)의 딸이다. 신창 맹씨 가
문의 맹흠인(欽仁)의 부인이며 늘 남편을 공경하며 생활하였다. 남편이 병을 얻자 지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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