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 84페이지

44페이지 본문시작

아산효열정려지
[37] 효자 윤취은 <尹就殷>
1518년(중종 13) ~ 1593년(선조 26)
토정 이지함도 칭송한 효행
조선 중기의 효자이며 본관은 신녕(新寧)이다. 아버지는 윤세형(尹世衡)이고 어머니는
여흥(驪興) 김(金)씨이다. 그의 다른 이름인 자(字)는 빙경(聘卿)이다. 부인은 경주 이
(李)씨이다. 그는 어려서부터 지극한 효성으로 부모를 섬겼다. 부친의 나이 팔십 세가 지
나서 눈이 어두워 아무 것도 보지 못하니 그는 잠시도 옆을 떠나지 않았다.
날씨가 몹시 더운 때에는 길가의 소나무 그늘로 모시고 나와 시원하게 해드리며 늘 함께
앉아 있었다. 선조 때에 암행어사 유근(柳根)이 아산 땅에 왔다가 마침 그가 훌륭한 음식
으로 부친을 봉양하는 것을 목격했다. 마음에 깊이 탄복한 암행어사는 조정에 돌아가 그
사실을 보고했다.
그리하여 그에게 효행으로 특별히 광릉참봉(종9품)의 벼슬을 내려주었으나 그는 끝내
사양했다. 그 뒤에도 창릉·집경전·건원릉참봉 등을 제수했으나 모두 나아가지 않았
다. 아산현감 토정 이지함(李之?)도 역시 그의 효행을 칭송했다.
[38] 효자 이문우 <李文宇>
효자의 애절한 심정‘호천망극’암송으로 달래다
조선 후기의 문신이며 효자이다. 본관은 전주(全州)이다. 자는 공칠(公七)이고 호는 화
암(華庵)이다. 유교경전에 밝고 행실을 바르게 익혀서 몸가짐이 늘 단정하고 엄숙했다.
더불어 부모에 대한 효성과 형제간의 우애가 돈독했다. 공주에 가서 벼슬하느라 효도를
다하지 못하자 과거 준비를 그만두고 관직에 대한 뜻을 접었다. 그리고 효자의 애절한 심
정을 읊은《시경》
‘요아(蓼莪)편’
을 날마다 암송했다. 그의 병이 심해졌지만 오히려‘호
천망극(昊天罔極)’
의 구절을 암송하며 목이 메었다. 부모님이 살아 계실 때 제대로 모시
지 못하였음을 평생토록 한탄하며 돌아가신 부모님을 애틋하게 그리워하였다.
[39] 열녀 덕수 이씨 <李氏>
40일 밤 남편 빈소찾아 울다 숨을 거둔 열녀
조선 후기의 열녀이다. 본관은 덕수(德水)이고 이태수(李泰秀)의 딸이다. 신창 맹씨 가
문의 맹흠인(欽仁)의 부인이며 늘 남편을 공경하며 생활하였다. 남편이 병을 얻자 지성
42

44페이지 본문끝



현재 포커스의 아래내용들은 동일한 컨텐츠를 가지고 페이지넘김 효과및 시각적 효과를 제공하는 페이지이므로 스크린리더 사용자는 여기까지만 낭독하시고 위의 페이지이동 링크를 사용하여 다음페이지로 이동하시기 바랍니다.
상단메뉴 바로가기 단축키안내 : 이전페이지는 좌측방향키, 다음페이지는 우측방향키, 첫페이지는 상단방향키, 마지막페이지는 하단방향키, 좌측확대축소는 insert키, 우측확대축소는 delete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