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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기흥은김용환애국지사의아들이다.


김용환(金用煥, 1892~1919)은 충남 서산시 음암면 유계리에서 김태제(金泰濟)와 전



주이씨의 장남으로 태어났다. 호는 백림(白林)이고, 본관은 경주로 충민공파이다. 태어


난 집은 바로 영조의 계비인 정순왕후의 생가이다. 현재 충청남도 기념물 제68호로 지


정되어 있다. 어려서 한학을 수학하고, 성균관에 들어갔다. 이때 이모부인 정주영(鄭周

永, 1860~1923, 남작) 집에서 기거하였다. 정주영의 부인 이 씨와 김용환의 모친 이씨




는 자매간으로 대원군 집안이었다. 궁내부 주사에 임명되어 관료 생활을 하였으나 일제
의 침략으로 나라가 기울면서 사직하였다. 그 후 1910년대에 정주영의 장자인 정두화(鄭
斗和, 1882~1939, 남작)가 경영하는 충남상업에 취업하였다. 정두화는 독립운동가 정
정화(鄭靖和, 1900~1991, 애족장)의 오빠이다. 정정화는 정주영의 셋째 딸로 김가진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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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들 김의한(金毅漢, 1900~1964, 독립장)과 결혼하였으니 대동단 총재 김가진(金嘉鎭,
1846~1922,남작)의며느리가된다.
김용환은 이러한 관계로 1919년 대동단 (大同團)에 가입하여 활동하였다. 대동단은
1919년3월말전협과최익환등이서울에서조직한단체이다.대동단은김가진을총재에
추대하고,상해임시정부의신규식과연결하였다.또한의친왕이강(李堈)을상해로탈출
시켜상해를독립운동의근거지로만들고자하였다.김용환은광희문안에살며상업에종
사하던중대동단에가입하여군자금을지원하는일을맡았다.전협이의친왕을상하이로
탈출시키기위한자금조달을요구하자340원을마련해주었다.같은달중순경에는전협
이펑톈(奉天)으로이주할때680원을제공하였으며,의친왕을상하이로탈출시키기위한
자금을관리하기위해전협을대신해서거금을한성은행에맡겨두었다.그런데이자금은
모두이종형인정두화로부터제공받았다고한다.1919년11월대동단사건이발각되어이
강공은압록강을건너자마자체포되어압송되었으며,전협등여러동지들역시체포되었
다.이때정두화도체포되어심문받았으나1920년6월방면되었다.
김용환은별도로자금을준비하여미리중국으로망명하였다.1919년음력6월중국항
주(杭州)에거주하던신규식(申圭植)에게대동단의외교사무를위임하라는대동단의밀
명을받고항주로건너가자금을전달하였다.그러나그곳에서불행히콜레라에감염되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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