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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술자김동벽(1936~)은애국지사김상정(1875~1954)의손자이다.


김상정(金商玎,1875-1954)은고종12년(1875)9월충청남도예산군봉산면마교리에



서 출생하였으며, 6·25 동란을 겪은 직후인 1954년 8월 서산군 성연면 고남리 상현 마을


에서 타계하였다. 그의 본관은 경주요, 자는 명옥(明玉)이요, 호는 한월당(寒月堂)이다.


남당학파(南塘學派) 계열의 유학자로, 김한록(金漢祿)과 김일주(金日柱) 등을 통해 내


려온호론적(湖論的)학풍을가학(家學)으로계승하였으며,김복한(金福漢)등호서지역



척사유생의영향을받아위정척사론에철저하였다.이에따라서그는존화양이론과토적
복수론,그리고척왜론을주장하였으며,이를항일의논리로채택하여적극적인독립운동
을 전개하였다. 4세에 부친과 사별하였는데, 어버이를 모시고 싶어도 모셔볼 기회를 얻지
못하였다 하여 그로부터 만 60년되는 날을 맞이하여 선친을 위한 상복을 입었다. 64세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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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이에옥고를치르면서상한몸이었지만살아계시는부모를섬기는정성으로하루도거
르지않고3년상을예법대로지켰다.1910년국망후궁벽한시골에서두문불출은거하며
나무와 돌을 이웃하면서 울분을 달래던 그는 1918년 고종의 시해 소식을 듣고 혈서 투쟁
을 시작하여 해방 때까지 줄기찬 항일투쟁에 나섰다. 1919년 격문을 발표하여 일본의 고
종시해를규탄하였으며혈서로쓴글을총독에게보내거나깃대에걸고시위하는등의혈
서 투쟁을 통해 민족의 봉기를 촉구하였다. 또한 군중 집회에서 항일투쟁의 방법으로 납
세 거부투쟁을 제시하면서 동참할 것을 호소하는 등 항일투쟁을 선도하여 서산 지역에서
3·1운동을봉기하였으며,왜경의가혹한탄압이자행되었다.그는모두다섯차례의옥고
를치렀다.일제는상복차림의그를체포하여강압적으로회유하려하였다.그는손가락
과왼편귀를자르는등의저항으로이에대항하였다.또한일제에의해단행된담배전매
제도를 반대하여 농민의 생계를 보호하려는 투쟁도 전개하였으나 체포되어 뜻을 이루지
못하였다.중일전쟁후에는격문을발표하여일제의총동원령과창씨개명정책을반대하
였다. 그는 해방 후에는 임시정부 주석 김구를 찾아가 친일 매국노를 처단하여 민족정기
를확립할것을건의하였으며,신탁통치를반대하여완전한한국의독립을주장하기도하
였다. 그의 사후인 1960년 서산 군민들은 「한월당선생의열찬송비 寒月堂先生義烈讚頌
碑」를세워“서산(西山)의맑은바람이요,동녘바다의밝은달일러라.”라고그의인품과
공적을기리고아울러그를‘열사’라호칭하며추앙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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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에서는그의공훈을기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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