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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서 과거에 급제하였고, 문사(文辭)에 풍치가 있고 아담하여 오랫동안 성
균관을 맡아서 학자의 모범이 되었는데, 나이가 많아지고 지위가 높아지면
서부터 병도 찾아왔으므로, 충주에 별서(別墅)를 짓고 거기에서 일생을 마
치려는뜻이있어병으로사직하고돌아갔다.
◎1469년(예종1)10월18일(무진)
행 동지중추부사 김예몽이 졸(卒)하니, 1일간 철조(輟朝)하고, 조문을 하고,
부의하고 전(奠)을 올렸다. 사부(詞賦)에도 공교하였다. 일찍이 과거에 급
제하여 집현전에 뽑혀서 들어가고, 여러 조정을 대대로 섬겨 벼슬이 공조판
서에 이르렀다. 일찍이 성균사성을 겸하니, 매양 제생(諸生)의 제술(製述)을
가려서 시험하여 우등한 자가 있으면 반드시 포장을 주어 권장하여 그로 하
1)
여금 성취하게 하고, 무릇 사람과 사귀는 데 애안
(涯岸)을 세우지 않았다.
2)
이때에 병으로 걸신
(乞神) 하고 충주에 돌아가 있다가 졸하니 사림들이 애
도하였다. 시호(諡號)를 문경(文敬)이라 하였는데, 부지런히 배우고 묻기를
좋아하는 것을 문(文)이라 하고, 부지런히 일을 받드는 것을 경(敬)이라 한
다.아들김덕원과김성원이있었는데모두과거에급제하였다.
위의 기록과 같이 김구의 가문은 조상 대대로 도덕과 학문, 절의가 높은 학
자들과 훈신(勳臣), 상신(相臣)이 많이 배출된, 예문종가(禮文宗家)로 삼한
갑족(三韓甲族)이라일컬어지는명문가에서태어났다.
1)애안:오만하여남과어울리지않음.
2)걸신:늙은재신(宰臣)이벼슬을사퇴하기를임금에게청원함.
40│묵향의본향에서조선4대명필자암김구를만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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