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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평리 마을은 거북 모양의 바위가 마을에 있어 지어진 명칭으로 거북 바위의 크기는 길
2m 60cm,
넓이
2m 30cm
의 크기로 다리 밑에 있어 그 다리를 거북다리라 불리고 들
판에 있는 마을로 마을 앞에는 곡교천이 흐른다.
4)
마을 변천 과정
신창군 소동면의 지역으로
1914
년 행정구역 폐합에 따라 신촌리
화달리의 일부를 대동
면의 구평리 일부와 아산군 삼서면의 수달리 일부를 병합하여 신촌과 화달의 이름을 따서
신달리라 하여 아산군 학성면에 속해 있다가
1921
년 명칭 개정으로 신창면에 편입 되었
5)
입 향
고실말 마을에는 강씨와 채씨가
500
여년 동안 살아왔고 병자호란 이후 모씨가 들어와 살
았다고 한다 병자호란은
1636
년에 일어났으며 이것을 볼 때 적어도 마을의 형성년대는
서기
1140
년경 약
860
년이 된 것으로 추정할 수 있다
구평리 마을에는 대동법 시행후 수리시설이 되면서 어려운 사람들이 모여 살았다고 하며,
150
년전까지 이 마을에는
11
가구에 남자
11 ,
명 여자
55
명이 살았다고 한다 지금은 외지
로 모두 나가서 마을의 형성년대 및 원거인 조차 알 수가 없었다.
6)
지 명
고실말 마을의 지명
고실말 하촌
구억말 왼쪽에 있는 작은 마을인데 옛날에 방앗간이 있어 붙여진 이름이
다 매방앗간이 있었다 함
구억말 윗말 궉말
수라리 서쪽에 있는 마을인데 구유말이란 뜻이다 짐승의 밥 그릇을
구유라고 하는데 살기좋은 마을을 구억말 궝말 궁말이라 불리어 왔다 이 마을에 천년이
넘은 느티나무와
5
수라리
소라봉 아래에 있는 마을 마을 앞에 큰 들이 있고 물이 풍족하여 곡식이 잘 되
고 가을이 되면 벼가 마을 앞까지 꽉 차게 되어 살기좋은 곳이라는 뜻이라 한다 이곳에
는 강씨가
500 ,
년 채씨가
500
년을 살고 병자호란 이후 모씨가 들어와 살았다고 함
효자 정문터
구억말 남쪽 산 기슭에 있는 오 도빈의아내 효부 동래 정씨의 정문 후손
없이 허물어지고 터만 남아 있음.
정자나무
구억말 왼쪽에
1,000
년이 넘은 늙은 느티나무가 있다 지금은 수세가 약하나
그 주위에 수령
500
년 넘는 팽나무 느티나무
8
흘러서 이 나무에 배를 매였다는 전설이 있다 정월이면 이 나무에 동제를 지냄
정자나뭇거리
구억말 왼쪽에 있는 길거리 늙은 느티나무 아홉주가 서 있음
정문터
구역말 앞에 있는 효자 오 명결의 정문 터
대동길
구억말 정문재에서 능말까지의 길
곤말길
대동길 옆 경노당에서 도둑 바위 쪽으로 넘어가는 길
곤말 고은말 아랫말
고실과 늠말 중간에 있는 마을로 고웁다고 붙여진 이 또는 골짜
기에 있는 마을이라 하여 곤말이라 함.
늠말 너멋마을
곤말의 넘엇말이란 뜻임 곤말 너머에 있는 마을이라 하여 너머 마을이
라 했는데 변하여 늠말이라 함.
뒷뫼산 소라봉 소적벽 고산
신달리 뒤 북쪽 갯가에 있는 산 높이
74m.
모양이 소라
와 같고 꼭대기가 펑퍼짐하고 갯가로 절벽이 져서 그 경치가 매우 아름답다 원래는 수라
리 뒤에 있는 산이라 하여 수라봉이라 하였는데 수라봉이 변하여 수라봉이 되었다고도 한
다 일제시에는 경남철도측에서 이곳에 각종 위락 시설을 하고자 했으나 주민들의 반대로
이루워지지 않은 일화가 있음.
적벽강
곡교천 적벽산을 돌아가는 부분을 적벽강이라 부른다 옛 선비들의 선유터임
망터들
번개 동쪽에 있는 들
번개 본개
구억말 남쪽 산 밑에 있는 들 전에는 이곳으로 개가 흘렀으며 상습 수해
를 입는 지역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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