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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양문화원
문화의 향기를 담아내는 소담옹기
[34] 효자 오명걸 <吳命傑>
손가락 베어 피로서 어머니 병을 낳게 하다
조선 후기의 효자이다. 신창현에서 살았으며 본관은 해주(海州)이다. 선전관을 지낸 오
도빈(吳道彬)과 효부 동래정(鄭)씨의 손자이다. 아버지는 오수경(吳遂慶)이다. 천성이
순박하고 효성이 깊었던 그는 어머니의 병환이 깊어지자 손가락을 베어서 피를 드시게
해서 어머니를 낫게 했다. 당시 사람들이 3대의 지극한 효행이 한 집안에 빛났다고 칭송
했다. 이 사실이 조정에도 알려져 아산시 신창면 신달리에 그의 효자 정려가 세워졌다.
지금은 없어졌지만 신달리 구억말 앞은 그의 정려가 있었던 곳으로 마을 사람들은 지금
도 정문터라고 부른다.
[35] 효자 윤대형 <尹大亨>
효성이 지극하여 고을에 칭송이 자자하다
조선 중기의 효자이다. 본관은 파평(坡平)이다. 자세한 내용은 전해지지 않지만 효성이
지극하여 고을에서 그의 효행을 칭송했다. 1665년(현종 6)에 왕이 온양온천에 행행하
였을 때 이 고을의 많은 선비들이 그의 독실한 언행과 지극한 효성을 표창하도록 천거했
다. 충청도 관찰사가 이런 사실을 조정에 알리니 나라에서 그에게 특별히 사직참봉(종9
품)의 벼슬을 내려주었다.
[36] 효부 파평 윤씨 <尹氏>
효성이 지극한 효부
조선 후기의 효부(孝婦)이다. 본관은 파평(坡平)으로 조선 후기의 학자인 천서(泉西)
윤혼(尹?, 1676~1725)의 손녀이자 문과에 급제하여 장령(掌令)을 지낸 재겸(在謙,
1701~?)의 딸이다. 온양군에 살았던 이원빈(李元彬)의 아내이다. 자세한 사항은 전해
지지 않으나, 효성이 지극한 효부라는 사실이 조정에 알려져 영조 때에 그 집의 조세(세
금) 등 여러 가지 부담을 면제받게 되었다. 정려는 현재 전해지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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