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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일분자를 처단하여 민족적 각성을 촉구하는 한편 군자금을 수합하여 길림군정서(吉林

軍政署)를지원할것을계획하였다.암살단단장김상옥은1920년8월11일광복단결사대




단장 한훈과 만나 미국 의원단이 내한하는 8월 24일 이를 환영하는 조선 총독 등을 암살


하기로계획하였다.그러나일제의예비검속으로한훈등이체포되었다.
6)


이때체포를면한서병철은1920년11월상순경경성관철동113번지김영호(金英鎬)집


에서김동준(金東濬)을만나서산군운산면신창리의김동준백부인김순제(金舜濟)에게



임시정부 군자금 1천 원 차용증과 군자금을 제공하라는 편지를 주어 김순제 집으로 파견
하였다. 그러나 김순제가 이에 불응함에 군자금을 수합하는데 실패하였다.
7)
서병철은 결
국 이 일로 일경에게 붙잡혀 1921년 6월 21일 경성지방법원에서 예심종결결정을 받고, 그
해11월15일경성지방법원에서징역2년형을선고받았다.공소하였으나1922년4월28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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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성복심법원에서 기각되어 옥고를 치렀다.
8)
정부에서는 고인의 공훈을 기리어 1990년에
건국훈장애국장(1977년건국포장)을추서하였다.
애국지사서병철은옥고를치른후고향해미에서일제강점기를보냈다.집안의농사일
을책임지는위치에있었으나옥고의후유증으로몸이불편하여직접농사일을하지는못
했고자식교육에힘썼다.해방후에일체정치활동에참여하지않았으며,생수사업을계
획한적은있었으나경제활동을하지는못했다.그가정부로부터건국훈장을추서받게된
것은 그의 사후의 일이다. 애국지사께서는 1920년대 일제의 강압적인 옥고를 2년간이나
겪으면서무릎관절이망가져평생다리가펴지지않는뻐정다리로살아오셨다.또어깨뼈
가 망가진 채 고통 속에 살아오셨지만, 생전에 자신의 독립운동에 대해 드러내놓고 말씀
을잘안하셨다.그래서훈장신청같은것을생각지도않았다.1977년작고한뒤아들정
익씨가비로소공훈신청서를제출하였는데,곧바로건국훈장애국장에추서되었다.아들
6)서병철등예심종결결정(경성지방법원,1921.6.21.).
7)서병철등판결문(경성복심법원,1922.4.28.).
8)서병철등예심종결결정(경성지방법원,1921.6.21.).서병철등판결문(경성지방법원,1921.11.15.).서병철등판
결문(경성복심법원,1922.4.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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